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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락눈 내려서
땅거죽이 살짝 얼어들던 십이월의 첫째날
남겨 두었던 감자를 모두 캤다
하지쯤에 맞추어 캐야 한다는
관행과 관념의 파괴
장하기도 하지.. 우리 게으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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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각을 해 보겠노라고 삼년전 어렵게 구해 두었던 마디카 둥치는
세해를 굴러 여름을 나고도 벌레 먹은곳 하나없이 성한 모습이었는데
어젯밤
유난히 이글거리는 난로 불빛 아래 아내는 햇빛 좋은 바위에 엎딘 바다코끼리 처럼 잠들어 있고
남방의 주홍빛 햇볕을 쏟으며 타오르던 마디카
장한 일이 감자캐기 뿐 이겠는가?
내 게으름조차 태양빛으로 불타 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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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녀끝 풍경이 자주 울고
흐린 하늘은 조금씩 싸락눈을 뿌리기도 하는 산골,
제석 할아버지 청솔가지 한짐을 지고 느릿느릿 걷고 있는 모습
이승인지 저승인지...아득도 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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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되고도
감자가 심겨졌던 윗밭에는 제법 뿌리 실한 냉이가 있어서
두어 뿌리쯤으로 끓여지는 된장 찌게는 때마다 우리를 황홀하게 만들어서
아주 잠깐
정신나간 모습으로 겨울을 얼싸 안을 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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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12월,
두눈 멀뚱하게 뜬채
세월을 도둑맞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