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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거리를 다듬는다든지
가사와 연관된 일을 한다면 어김없이 아내를 잘 도와준다고 얘기들 한다
그러나
이 나이쯤에서 네 일, 내 일은 무엇이며 도움이란 또 뭣이란 말인가?
그저 담담한 내 일로 그만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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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도백이 라고도 하고 근친 이라고도 하더라
시집 간 딸이 신혼 여행을 끝낸 뒤 친정 부모를 찾아 뵙는 것,
그러나 세월이여
기껏해야 제주도 정도를 다녀오던 여행에서
밤낮을 홀라당 뒤집어 버리는 긴 여행 끝에 돌아와
눈꺼풀이 땅으로 꺼져 내리는 상황에 뭔노무 친정 나들이,
두눈 말똥한 내가 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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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번의 비 끝에
산꼴짜기 오두막 굴뚝은 젓빛 연기를 뿜어 올리고
마당 가득한 낙엽 위에 누운 기진한 가을
이미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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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들이 닥치기 전에 해야 할 일들,
늙어 빠진 짚차와 트럭은 손질을 마쳤고
바퀴가 시원찮았던 장작 운반용 수레도 정리가 되었는데
윗밭의 물통과 불 때는 방의 바닥 마무리와 다시 굴뚝...
게으른 선비 책장 세듯 이런 저런 일거리들 손꼽기만 하는 동안
겨울 지나 봄이 오곤 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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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동안
뒷산 늙은 소나무 숲 속에 버려 두었던 산책길을 다듬어 줘야겠네
눈 익었던 그 길들 되살아나거든
뽀얗게 눈 내리는 날 더듬더듬 마실을 나서서
눈 위에 남겨진 산짐승들 정직한 행선지를 따라
바람의 손 잡고 걸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