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길이 없어도...

햇꿈둥지 2009. 4. 30. 15:25

 

 

                                                                                                    [세계도자Biennale 전시 작품] 

 

#.

봄 에는

나무들 초록 그늘 짓기에 바쁘고

덩달아 수다스러워진 산새들 나무의 초록 품을 빌어 예쁘게 집 짓고 새끼 치기 바쁜 철

햇볕과

바람과

온 들이 착해져서

그 안에 작은 심장이 뜨거워지는 날

허공의 붉은 심장이 되어 날아 갈게다

 

#.  

제법 굵은 줄기를 만들어 가는 마늘 세개를 뽑아서

기어이 막걸리 안주를 삼는다

산그늘 길게 눕고

서산 노을이 먼저 취하는 저녘

마늘 대궁 깊이 품었던 지난 겨울이 알싸한 향기로 되살아 나고...

 

#.

물이 고장 났다

초롱 초롱 넘쳐야 할 물이 뚝 끊어지고 만 것

이제는 쫄것도 없이 대충 안다

봄 깊어질 동안 가물고 가물던 날 끝에 내린 비로 한껏 신명난 물줄기 따라 나뭇잎 등이 함께 몰려 내려 오다가 연결 부위 어디쯤을 막아 버렸을 것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일치인지

영인 아줌니께서 밭에 약 뿌릴 물 좀 얻자고 올라 오신 것

 

"물 쓰듯 한다..."는 말씀

이젠 어림도 없는 시절이 되어 버렸다 

 

#.

4월이 가 버렸다

한주 한주가 도둑맞듯 비워지더니

4월이 가고

이제 주변 어디에도 겨울은 흔적조차 없고도

마당 가득 라일락 향기만 흥건하다

 

#.

냉이가 꽃을 피워 늙어 빠지고

지칭개며 조뱅이도 꽃대를 올릴 모양이다

밭이며 마당가를 가릴 것 없이 온통 초록으로 어울어지고 더울어졌다

냉이가 꽃다지를 탐 하는 일 없이

산사나무가 박테기나무를 시기하는 일 없이

다만

기대어지고 섞인채로 넉넉하고 다양한

그래서 아름다운 봄날들...

 

새소리 법음이 되고

변하는 주변 모두가 무언의 가르침이 되는 산꼴짜기 촌동네

 

사람이 땀 흘려 만든 길은 사람의 길일 뿐

바람과

세월이 어디 길 있어 가든가?

 

자연은

길 위에 있지도 않고 길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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