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제사를 모시고 돌아선 길
도시에서 부터 시작한 새벽 눈발은 날 밝을 무렵부터 더욱 성성해지고
이튿날 다시 도회에서 치룬다는 조카아이의 결혼식
모처럼 만난 형제와 친지들은 비워졌던 세월만큼 적당히 늙어 있었다
그 동안의 적조로 멀어졌던 서먹함을 술잔에 채워 비우고 비우고 비운 뒤
거리를 돌아치는 바람처럼 흔들리는 걸음으로 산골 내 집에 당도해 보니
얼음으로 속을 가득 채운 날쌘 바람의 추위
겨울의 난장 이었다
그 냉랭한 틈새에서 생명줄 같았던 물이 얼어 버렸다
모터 펌프를 이용하는 다른집과 달리 산속 샘에서 긴 거리를 이동해 오는 물줄기는 어디서 고장이 나든
이 추위 속에서는 통째로 얼어 버렸을 것,
해결의 방법이 없다
초복이 되어 스스로 녹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는...
5년전쯤 경험한대로 비상급수 시설을 설치하기로 했다
얼지 않을 실내에 200리터 용량의 물통을 설치하고
모터펌프와 연결한 후 토출측 배관을 기존의 급수 라인에 연결하는 일
15밀리 엑셀 배관을 부분별로 재단하여 자르고 이음으로써 여섯군데의 곡각배관을 연결하고 전기공사를 하고...
일을 하는 동안 드나들던 보일러실의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더니 기어이 보일러 모든 배관이 얼어 버려서
다시
전열기를 이용하여 녹이고 풀고...
사는게 아니라 서바이벌 게임을 하는거다 이노무 산속살이...
완벽한 형태는 아니지만 급한대로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수동 방식으로의 전환,
덕분에 퇴근 길 꼬맹이 차에는 다섯개의 물통이 늘 실려 있다
내 살이에만 몰두하여 마을 모두가 시간 가는대로 탈 없이 겨울을 건너고 있는 줄 알았지만
몇몇 집들은 이미 물이 얼어 버렸음에도
"옛날에는 모두들 물동이로 길어다 먹고 살았다"는 의연한 대답
본래적 수동의 삶을 기어이 자동으로 바꾸어 놓고는
그 기능이 일시 마비되는 상황에서 지나치게 절망하며 사는구나
수동 방식으로 바꾼 뒤에 우리가 소비하는 물의 량은 놀랄만큼 줄어 들었고
또 줄어든 량 만으로도 얼마든지 일상적인 것들이 유지 되었다
결국
문화와 문명으로 거짓 포장된 방식에 의해 우리는 지나치게 소비하며 살았다는 결론,
뒤집어 표현하면 소비 조장의 선동 방식이 문화와 문명이 되기도 하겠지
절대로
물이 얼어 죽은 것을 적이(?) 알지 못하도록 하라는 아내의 지엄한 분부가 있었음에도 기어이 까발려야 함은
상황에 좌절하기 보다는 어떤 방식으로든 시골살이 비상구를 열어가고 있는 스스로가
참 대견하다는 생각 때문,
올 겨울
참 징하고도 버롸이어뤼 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