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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녘 눈 소식이 그리 싫지만은 않아서
이제 막 쏟아지기 시작하는 눈 길을 흥얼흥얼 지나는 동안
어묵솥 김 폴폴 오르는 길모퉁이 포장마차를 찾아
선채로 정종 대포나 한잔 때렸음 좋겠다...꿈만 꾸다가
정작 집 오름길은 비틀비틀 용을 써서 오르고도
좋구나
눈이 오는구나
이를 기념하여 일배우일배 후
여기 찍고 저기 찍고의 사진 속에 목화송이만한 눈송이들이 만개해 있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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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의 눈은 소리조차 묻어 버리시는지
새소리 조차 잠잠해진 해질녘
마을이 침몰하고
허리 굽은 사람 모두가 침몰하고도
궁금한 것 하나 없는 숙명의 계절,
봄 부터 여름 지나 가을의 날들마다
만화방초 호사스럽던 꽃들은 오로지 하늘바라기 였을 뿐
하늘 탯줄을 끊어 버리고
아주 가볍게 땅위로 눕는 흰빛 꽃송이들 속에서
추위 또한 찬란해지는 계절
산중 어둠속에서 철없이 행복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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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행복
새볔 선잠을 깨어 거두어 버린다
초저녘 눈발이 뜸 하길래 이제 그만 오시려나...했던 건 밤꿈의 허사였고
잠자리를 거두고 내려선 뜨락엔 발목이 묻히도록 쌓여 있어서
산골살이 이 지랄은 또 츰이지...
별빛 말똥한 신새볔 부터 눈치우기 고행
밀고 쓸고...
한시간 남짓의 땀 흘림 끝에 비상구 열어 세상으로 내려서는
희고도 시린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