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고추 안부

햇꿈둥지 2018. 9. 15. 03:18









#.

30분 만에 한대씩 다니는

시골버스를 기다린다.


#.

윤기나는 차들이 사납게 지나가는 정류장

앞산 찰지던 초록이 이제는 시름없다.


#.

하늘은

깊이를 모르게 푸르니

본격 가을,


#.

여름내 그을었던 피부 그대로

나들이 길을 나서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가득한

삐그덕 늙은 버스


#.

무릎이 아프고

팔목이 아프고

허리가 아프고

어깨가 쑤시고...

모두들

온몸으로 일구던 밭과 들에서 감염된 관절통이다.


#.

그런 중에도

당연 이때쯤의 얘깃거리는

고추 고추 꼬추다.

"올해 심은 꼬추는 갓이 얼마나 두꺼운지 마르기 보다 무르는게 많아 30근을 버렸네"

"잘 말려 가다가는 깜빡 건조기에 넣어둔 걸 잊어 버려서 까맣게 탔지 뭐여~"

한 평생 내공에도 저토록 시행착오가 많으시니

올해 우리집 꼬추 조금 버린것 정도는 그저 빙그레 웃어 버리면 그만이겠다. 


#.

하늘 궂은 날이면

마당에서 집안으로 다시 마당으로

끌어 들이고 내 널기를 반복하는 동안 흘린 땀 만큼씩

고추는 고운빛으로 말라갔다.


#.

여름내 찰진 초록으로 장하던 나뭇잎들이

군데 군데 벌레 먹은 자리 하고도

조금씩 푸석한 모습,


#.

사람의 한 생 또한 저러한 것 이라서

세월 가는대로 기어이 겪어야 하는 과정임에도

병원은 북적이고

헛된 보양의 비법이 곳곳에 넘쳐난다.


#.

아침 이슬량이 많아지고

제법 시리니


#.

풀숲새로 쑥부쟁이 피어나고

빼곡했던 앞산 숲에 바람의 길이 선명해지는 계절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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