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케첩과 고추장

햇꿈둥지 2007. 9. 3. 11:11

 

 

 

#.

視.

聽.

臭.

味.

觸.

다섯 가지 감각에 갇혀 있는 몸뚱이 우선의 삶을 살다 보니

그저 배 부르고 등 따시면 행복 이거니 하며 살았는데

이 나이에 갑자기 무슨 병이 도진건지

창밖 낙숫물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이 모든 것은 실재 하는 걸까?

 

아주 큰 것도, 아주 작은 것도 볼 수 없는 눈 이며

아주 큰 소리도, 아주 작은 소리도 들을 수 없는 귀 이며

신체적 감각 한계 밖의 것은 하나도 느낄 수 없지만 그럼에도 그 한계 밖의 어떤 것들은 분명히 있는건데

다만,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손에 만져지는 이것들 만을 전체로 알고 살아야 하는

나는 무엇일까?

 

만물의 영장?

 

죄송해라

이 불완전 하고도 꿈 길 같은 날들이여~

 

#.

뮌스터 에서

이제 다시 부다페스트로 옮겼노라고

그리하여 이 나라 저 나라 친구들을 사귀었노라고

비싼 전화기 넘어에서 영어 인지 독일어 인지 중국어 인지

완전 짬뽕의 깔깔 웅성 거림이 한 동안 이 산꼴짜기 까지 넘어들어 왔다

 

모 처럼

먼 이국의 한인 민박 집에서 정성껏 준비해 준 한국 음식은 별로 내키지 않더라는

빵과 버터와 치즈가 너무 너무 맛있어 죽겠다는

그 아이 짐 속에 보물단지 처럼 요것 조것 맛 있다는 것만 골라 넣어 볶아 준

고추장 단지는 애물단지가 되어 버린 걸까?

 

그 아이들이 좋아하는 케첩을 보면서 내가 고추장을 연상하는 동안

그 녀석들은 내가 좋아하는 고추장을 보면서 케첩을 연상 했을테지...

 

나와 그 녀석,

둘 중에 하나는 외계인 인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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