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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불기를 기다려 수은주는 곤두박질을 시작했고
푸석한 갈대들이 바람의 끝마다 몸을 세워 일러 주던 그곳에는
찬란했던 가을이
박제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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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의 속살을 뭉떵 들어내어 성의없이 눕혀 놓은 임도 50리,
아무렇게나 바람 속으로 뛰어들던
산새의 무리 같은 낙엽...이거나
낙엽의 무리 같은 산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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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없이 바쁜 길을 도막내며 서 있는 신호등이 없는 길,
이를 앙다문채 날카로운 엔진음을 쏟아내는 차가 없는 길,
그리하여 사람조차 없는 길에는
바람과
구름과
송곳니 날카로운 겨울뿐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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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바람의 틈새를 빌려
막걸리 한잔을 마실 때 쯤
그토록 애중하던 사람의 일은
또 얼마나 허망 하든지...
가을 반
겨울 반이 제멋대로 엉켜 있는 임도 50리를
흔들흔들
바람과 손잡고 걸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