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이제 겨울,

햇꿈둥지 2017. 10. 29. 17:51





#.

바람이 먼저 앞장을 섰다


#.

더운 날들 초록으로 성실했던 나뭇잎들이

잠시

노을빛 정염으로 불타 오른 뒤

속절없이 쏟아져 내리던 날


#.

김장을 했다


#.

이런 날 항아리 속에 담겨진 김치소에선

엽서 같은 낙엽들이 섞여 나오곤 했었다


#.

이제 겨울,

명랑하던 새들도

뒷산 깊이 숨어 버리고

산새 대신

배고픈 고라니가 기진한 목소리로 울곤 했었다


#.

그리고 밤,


구들방 가득 불을 들이고 나면

그 온기 만으로

안온하고 행복하다


#.

이 밤

바람소리와

나뭇가지들이 서로 몸을 비비는 낯선 소리들은

늘 새로운 전설이 되고

나무들은

그 이야기들을 나이테로 둘러

추운 밤에도 조금씩 몸을 불릴 것이다


#.

그리하여 겨울은

아주 춥지도

아주 외롭지도 않은

따듯한 시간들이 될 수 있는 것.



'소토골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밤마실  (0) 2017.12.03
겨울 진화,  (0) 2017.11.22
고양이 쥐 생각  (0) 2017.10.07
별빛 불면  (0) 2017.09.18
경과.3  (0) 2017.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