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풍경소리

오래된 기억

햇꿈둥지 2008. 3. 11. 16:59

 

 

 

겨울동안 나는

맛도 멋도 없는 러닝 머신 위를 삭막하게 걷고 있었다

대충 내 몸을 깨워 일어나서 움직이는 시간은 야속하게도 칠흑의 어둠이 걷히기 전인 새벽 시간 이었고 밖은 지나치게 추웠으므로...

경칩이 지나고

새벽이 부지런해지기 시작한 날 부터

나는 미명의 새벽마다 다시 산길을 걷기 시작했다

겨울을 나는 동안 그 길목에는 두개의 새로운 무덤이 생겨났고 한채의 집이 빈집으로 버려져 있었다

햇빛에 의해서 보다는 온순해진 바람결에 녹기 시작한 음지의 눈들은 질척한 웅덩이로 고여 있어서 간혹 철푸덕 헛 걸음질에 감탕물을 튀기는 일도 있지만 나는 되찾은 자유를 누리듯 이 길을 걸으며 게으르고 서툰 기도를 하거나 새소리를 듣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하여튼 하여튼

아무 구속도 거리낌도 없는 나만의 시간 속에서 왼갖 꼴리는대로의 짓꺼리를 다 하며 한시간여를 걸을 수 있는 것이다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누구를 배려 할 필요도 없고

내가 속해 있는 조직의 시스템에서의 일탈을 걱정 할 필요도 없는

참 자유의 시간 속을 무려 한시간씩이나 누린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기적인가?

이 숨막히는 일상의 굴레 속에서는...

 

그러다가,

천방지축으로 오도방정을 떨어가며 그 길을 걷다가

오랜 기억 속에서 부활하여 흥얼거리게 했던 노래 하나

 

"...Was in the spring

and spring became the summer

who`d have believed you`d come along

 

Hands, touchin` hands

reachin` out

touchin` me

touchin`  you..."

 

"...어루만지는 손 길, 손 내밀어 날 만져 주고 난 당신을 어루만집니다..."

 

이노무 케케묵은 노래는

대학 진학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 하여야 할 고삐리였던 내가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버스 회수권으로 개피 담배를 바꿔 피우며 종로2가의 뮤즈먼트 코너에서 동전 한잎과 바꾸어 듣던 노래였다 

 

그런데

왜?

갑자기 새벽 길에서

이 케케묵은 노래를 흥얼 거리며 환장하게 행복해지는 걸까?

손 내밀어 어루만져 주길 바랐던 단발머리 소녀 하나를 기어이 마누라 삼아 흰머리 성성한 시골 아낙으로 망가트린 것에 대한 희열일까?

 

허긴

겨우내 옹크려 있던 숲의 나무들이 싱싱하게 깨어나고

낮은 목소리로 산비둘기가 울고

사랑하는 애인의 목소리 처럼 귓볼에 맺히는 바람결...

 

봄 이라 하니

조금은 행복해 지기도 하고

뽕 맞은듯 횡설수설도 하고

그러다가

그러다가

스스로 환장을 해 버려도

다아~ 용서 될 것 같지 않은가?

 

모두의

봄...이라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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