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풍경소리

여름결산보고서

햇꿈둥지 2016. 8. 20. 03:44





#.

아내의 코고는 소리에 가만히 잠 깨인 새볔,

열이레 새볔 달빛이

메밀꽃 처럼 소복하다.


#.

몇십년 만의 기록적인 더위라고

온 나라가 혀를 빼어 물고 있는 동안

티비는 연일 기상청 발 뻥을 전하기에 여념이 없어서

땀에 절은 몸과 마음에 

울화통은 사은품,


#.
지난 15일은 생일이었다
8월의 한가운데 이며
여름의 사타구니였다
다만,
생일 축하를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무장한채
동서와
처제와
조카와
손주와
옵션으로 천방지축의 개들까지
집구석 미어터지게 몰려 왔으므로

#.
아이들 뛰지
강아지 뛰지
고양이도 뛰지,

#.
백수의 빈한한 일상마져
피난이 필요할 만큼의 소요 속에서
어지러운 표류를 시작 했었다

#.
다만,
오지랖으로 치부하기는 해도
참 황공하옵신
마누라님의 포용,

#.
생일을
다시 음력으로 옮기든지
아니면
올림픽 열리는 해에만 한번씩 하든지,

#.
윗밭 옥수수 베어낸 자리에 배추를 심기 위해
이 일 저 일을 준비하는 중
건조기 옆부분에 세워져 있던 농기구를 만지는 순간
평소에 작은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하던 귀에 시끄러울 정도로 가득 울리는 부웅~ 소리
웬 부웅?은 곧
멘붕 상황을 몰고왔다
왼쪽 바른쪽 손과 팔의 벌 쐬인 통증을 그저 허공에 털어낸 뒤
아내의 긴급 처방으로 성능 좋은 된장?을 발랐고 그전의 경험처럼 괜찮으려니 였는데
덜컹거리는 가슴의 심계항진과 온몸으로 가득 번지는 가려움증
급히 차를 몰아 병원 응급실에 들어 선 뒤 젊은 의사와의 문진,
-느낌이 어떠세요?
-우스워요
-우스워요?
-온 몸,  특히 발바닥이 가려우니까요

#.
진료비 3만2천원은 지난해 벌쏘임 응급 진료비와 같았으므로
나와 아내는 무척 기분이 좋았다
왜냐하면 이번에는 무려 세방이나 쏘였음에도 같은 금액이기 때문이다
역시
세방이나 쏘였음을 얘기 안하기를 잘한 것 같다

멍게 부부,

#.
이 더운 날
고양이 초롱이는 두번째 출산으로 다섯마리의 새끼를 끌어 안고 있으며
다섯번쯤 벌에 쏘였으므로 아내는 다섯번쯤 더 된장항아리를 열어야 했으며
이런 저런 손님 치레가 있었으며
가끔은 초록 그늘 해먹에 누워 몇권의 책을 읽었으며
툭하면 벌거숭이 몸이 되어 마당가 물놀이의 호사를 했으며
정기적으로 배달되는 우편물을 통해 저잣거리의 풍문을 엿들었으며
누추한 정자위에서 바람과 무릎 맞댄채 기타를 두드리며 희희덕 거리기도 했는데

#.
더위의 단내 속에 열뜬 노을이 번지는 저녘
마당가 헝클어진 풀을 뽑는 손 넘어로
가만히 사라져 가는 뱀의 꼬리처럼
기어이 떠나야 할 여름,

#.
이 여름도 또
전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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