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선녀는 없다.

햇꿈둥지 2008. 1. 7. 11:52

 

 

 

 

 

기름 보일러에 등유 두 드럼을 채운 뒤에 40만원이 넘는 돈을 지불한 마누라는 그 시간 이 후로 보일러 봉쇄령을 발했다  

자기야 속에서 천불이 날테니 그 열로 견딘다고 해도

기름 넣는걸 본 일도

돈 깨지는 일을 겪지도 않은 죄 없는 나는 천불은 커녕 열불 날 일도 없이 유일한 보일러 봉쇄령의 피해자가 되어 덜 덜 떨어야 했다

 

마누라의 천불난 모습과 분위기에 치여 떨고, 추위에 떨고...

 

보일러 봉쇄령에 더 해

산꼴짜기 오막살이의 난방 방식을 획기적으로 개선 하겠다는 다부진 New deal 정책에 의거, 불쌍하기 짝이 없는 폼으로 달 달 떨고 있던 나는 나뭇꾼이 되어 산으로 올라가야 했다...팔자 하구는...

어쨌든 헥 헥~ 거리며 뒷산을 오르는 동안 신체 내부의 자발적인 발열 작용에 의해 추위는 잊을만 했지만

산 가득 싸가지 없고도 가정 교육이 덜 된 폼으로 뻣뻣하게 서 있는 나무들은 땔감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우친 뒤에 만만한 놈들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간간히 나무 사이에 진이 빠져 누워 있거나

서 있기는 하되 지난 해 눈의 무게를 못 견뎌 중동이 부러진 채 서 있는녀석들을 골랐...지만 ...

이 놈도 저 놈도 어깨 짐으로 둘러 메기에는 너무 크고 무거워서 비짓 땀만 흘리다가...엄전한 자세로 누워 있는 놈들이 쪼끔 고분 고분 할 것 같아 엔진 톱을 들이대니 아무 저항 없이 톱날을 받기에 단전의 힘을 모아 번쩍 들어 올리니...

제기럴...삭을대로 삭은 몸뚱이가 그만 와삭 부서지고 말더라...

 

그렇커니

묵은 삭정이에 마져 죄송한 마음이 일어

이제 부서질 몸을 내게 맡겨 함께 불이 됩시다...기도 하는 마음으로 난로에 불을 들인 후, 

마누라 혼곤히 잠들기를 기다려 쐬주 한잔 때린 뒤에

잔가지 거니 모아서

하늘을 비상하는 새가 되라고

소품용 솟대 하나를 깎아 세웠던 산 속 한나절

 

사람살이

무엇이 풍족해야 기름지겠는고?

 

따땃하니 좋구만~

 

다만 아쉬운 건

마누라도 나이가 들으면 천사가 되지 않는다는 것,

이 시대엔 아무리 폼나는 나뭇꾼이 되어도 선녀를 만나지 못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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