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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랑이 보다 먼저 일어서서
종일토록 밭을 갈던 박씨 영감님이
밭일의 시간 보다는 밭고랑에서 햇볕바라기를 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느릿 걸음으로 밭을 갈던 늙은 소와 함께
이젠 퇴역의 농군이 되었다는 것,
그니의 어깨에
쇠락한 햇살 몇자락 심해의 수초처럼 흐느적 거리는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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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반복되어 왔던 것 처럼
내 일상의 단위는 한주간씩의 토막들이 연속 되고 있었다
월요일 부터 금요일 까지는 소토골이 비워지고
토요일 일요일의 어거지 놀이...
계절 바뀌어 장작 만드는 일이 1순위 과제가 되었고
어둔 시간에 집에 들며 마주치는 장작 더미는
한주간의 단위만큼 헐렁하게 비워져 있었다
내 몸 살점이 뚝 떨어져 나간듯한 느낌
그 빈자리를 채우고 나면
또 다른 월요일로 시작되는 한 주...
시시포스도 이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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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볔 강은
밤새 어둔 산길을 도란 도란 흘러 온 강물의 아우성이 왁자하고
산발한 채 허공에 흩어지는 물안개
조심스런 유동 속 진공의 적막이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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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밭 한켠이 아작이 났다
처음 그 광경을 목도 했을 땐 "배추도 단풍이 드나?" 했었는데
아내의 조합장급 예리한 분석 결과에 의하면
무름병에 의한 병리적 현상 이라는 거였다
"그래도 그냥 먹을 수 있지 않겠어?"
"소태처럼 써서 절대 먹을 수 없다"는 대답...
밭을 갈아 씨를 뿌리고 틈틈히 어루만져 정성을 들였던 그 무게만큼 좌절한다
그리고 비로소 소통한다
튼실한 장단지 같은 무우를 상품 가치가 없어 버려야 하노라는 종구 씨의 무너진 노고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