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씨 뿌릴 때를 안다는 것,
이것 만으로도 그럭저럭 농사꾼 모습이 됩니다
여기에 더 해 제대로 사용하기 보다는 남의 손을 빌려 애 쓰고 민망하기 태반이던 이런저런 농기계들을 제법 잘 관리하고 때 맞추어 쓸 수 있다는 것은 참 대견한 일 입니다
아침 동틀 무렵 밭 가운데 모아 두었던 고춧대를 태우고 있는데
밭 위 숲속이 요란 합니다
멧돼지 두놈이 싸우고 있는 모양...조용한 산골 아침에 그 소리들은 괴기스럽기 까지
합니다. 만우절 기념으로 뻥친 얘기를 소문으로 들은 녀석들이 실제 상황을 만들려는 것 일까?
이런저런 농기계들을 끌어 안고 있다고는 해도 어차피 종구씨의 트랙터가 밭의 흙살을 곱게 갈아 준 뒤에나 내 몫의 일이 생기는 셈 입니다
밭갈이를 위해 기계의 시동을 걸듯
사람의 시동을 위해 막걸리 사발을 나눈 뒤에 시작 된다는 걸 어줍잖은 경험으로 알고 있기에 이제 막 피어 난 햇살이 서리를 녹일 시간쯤 정갈하지 않은 마당 귀퉁이를 빌려 마을 소식이 버무려진 얘기들을 듣고...나누고...
고추 이랑 다섯,
감자 이랑 셋...쯤의 일에 먼 곳 분들이 애 쓰셨습니다
지난 가을 심은 마늘이 온통 푸른 싹을 틔운 것 처럼
감자도 싹이 나고 잎이 나고 꽃을 피워 바람과 하늘과 별빛과 달빛을 모아 옹근 감자를 주렁주렁 매 달 것,
"그 까짓거 얼마나 먹는다고..."의 푸념에도 불구하고 씨 감자를 넣고 다독다독 고운 흙을 덮는 아내의 마음 속에는 나눔을 위한 많은 사람들이 채곡히 덮여 있음을 압니다
마늘 몇 알 이거나
감자 몇 알 이거나
싱싱한 풋고추 한줌 쯤으로도 사랑 표현과 나눔이 가능한
이즈음 바람처럼 아름다운 시골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