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풍경소리

내 놀던 옛동산

햇꿈둥지 2007. 2. 27. 12:56

 

우라질노무 세월은 케이티엑스 찜쪄 먹게 빨라서

대갈빡 정수리 부터 킬리만자로의 만년설 같은 흰머리가 쏟아지는데

햇볕 늘어지니 온 몸도 늘어지고 

어느덧 봄 이로구나

점심 한그릇을 때리고 사무실 창밖을 바라보다 보니...

 

그래

그때 였구나

벌써 삼십년 하구두 여섯해 전의 그때 그곳 이로구나

빡빡 대가리에 학교는 건성이고

툭하면 땡땡이를 쳐서 교실 안에서 경건하게 먹어 치워야 할 도시락을 저노무 나무 그늘 아래서 비우고는 후식으로 막걸리도 때리던 노무 시키덜...

 

이 숲은

죽어 자빠진 단어들만 빼곡한 교과서에 갇혀 있던 우리들에게

유일한 비상구 였던 셈이다

 

별명이 땡삐였던

학생주임 선생님께 걸려서 빠따를 맞는 일만 피 할 수 있다면...

  

 

하늘을 받치고도 남을 만큼 우쭐 우쭐 자란 나무 사이를 걷는다

약수터는 여름용인지 아님 얼어 터진건지 물한모금 건네 주지 않는데

스텐으로 세운 간판하나 삐까하고도 목마르구나

 

 

제 각각 하늘을 향해 몸을 세우고도

땅 속 뿌리는 은밀히도 어우러졌구나

연리지가 별거랴...

 

 

그때의 세월 같으면

무슨 수로 저렇게 소담스런 솔가리를 볼 수 있으랴

구들방에 군불까지 들여야 살 수 있었던 시절,

어깨에 제법 근육이 붙었다 싶은 나이부터 전용 지게를 둘러 메고 마을 근동의 뒷산 부터 멀게는 몇개의 고래등 같은 산을 넘어야 몇일의 땔감이 해결되던 시절 이었고

덕분에 주변에 보이는 모든 산들은 앙상하게 늑골을 드러낸 벌거숭이 산들 이었지...

긁어 모은 솔가리를 솔가지로 동그랗게 묶어 지게 위에 얹어

쉬고 쉬어

구비 구비를 넘어 돌아 오던 지게의 행렬은 아직도 어제 본듯 선연한 모습인데

 

 

보물섬에 버려진 해적의 손목 같은 갈대 하나

겨울 바람을 견디는 동안 쇠잔해진 몸을 더 이상은 일으키지 못해

저 앞에 봄이 오는데

기어이 누워 버릴 모양이다

 

점심 시간 후

잠깐씩의 산책 길이 되어 버린 이 숲속,

 

땡땡이 한패거리 였던 다섯놈 중

두놈은 군청에 틀어 박혀 먹고 살고 있고

또 한놈은 이 산 바로 옆댕이에서 물,불을 안 가리고 살아가고 있고

또 한놈은 저 아래 사람의 거리에서 사회 복지관 관장님이 되었다 하니...

 

나라 꼴 하고는...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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