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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한복판이 흥건하도록 비가 내리고
병참선을 잃은 추위는
발걸음 조차 힘없이 어지러웠다고
풍경은 밤새 고자질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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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둑
3일을 베어 낸 2월의 날들속에
입춘이 담겨 있었으므로
좋은일만 가득하고도 따듯한 기운마다 경사롭기를 기원 했으니
아직 푸석한 나뭇가지들 보다 앞선 마음 가지부터
온통 연두연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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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여러 집에
입춘첩을 나누었다
입춘부터 대낄하여 그냥 저냥 다정 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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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손주를 보신 형님 눈에는
늘 꽃 같은 그 녀석이 매달려 있었으나
홀로 염불,
정작 아들 며느리는 그 아이의 수호신장이 되어
지난 명절에는
이곳 치악까지 오기 너무 멀어 아이가 힘드니...의 논리로 무장하여
할아버지 할머니를 서운케 했으므로
그날로 치악 명절을 형님댁으로 되돌려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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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님 혼령은 어지럽고
먼 길을 가야하는 우리는 곤비했으나
손주를 품에 안을 수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는
살그머니 흡족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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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楷書)를 조금 다듬어 볼 요량으로 청계천 헌책방을 찾아
70년대 말 스스로 다듬어 체본하여 쓰던 천자문 한권을 구했다
낡은 표지 안에
00서예원 000라고 씌여 있는 오래 전 자료,
그 동안 서법이 다듬어지고 변형된 것 조차 느낄 수 있어
오히려 이 시대의 해서는 자획이 조금 더 날카로워졌음도 알겠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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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랗게 변색된 책장을 넘길 때 마다
첩첩이 압착되어 있던 시간들이
오래 전의 냄새로 되살아 난다
삼천원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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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간,
깨어나는 아침 공기 속에
봄 기운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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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 선
해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