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왔습니다
그렇게 겨울이 왔는데도
아직 가을의 정염을 손 놓지 못한 뒷산이며
꼬마 회오리
낙엽 몇잎을 볼모로 난장을 일구는 산골 마당가에
널부러진 일거리들을 다독이다가
동동 거리던 일손을 놓고
난로 가득 불을 넣은 뒤에야
온몸에 붙어 있던
해질녘 추위 조각들을 털어 냅니다
난로 곁 옅은 노루잠에서 깨어 펴든
시집의 붉은색 첫장
아빠,
보다 따듯하고 명료하고
사랑스럽고 영화 같고
황홀하고 거미줄 같고
지는 여름의 매미소리 같고
하늘에 맞닿은 나무 같은
날들 보내세요
그 많은 생각들 접어 두고,
사랑해요.
창 밖
바람에 흔들리는 온통의 것들 먼저 접어둬야겠어요
뒷산 능선을 수시로 넘나드는
망나니 바람도 잡아둬야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