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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프로그램에선
교양이고 법도고 지랄이고 아귀처럼 음식을 넘기며 엄지를 치켜 세운 모습
이 달 안으로 저 음식 먹지 못하면
건강한 여름을 날 수 없음은 물론
대번
영양실조라도 걸릴듯한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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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간대
이쪽 프로그램에선
"살과의 전쟁" "죽기살기 다이어트"의 살벌한 이름을 붙인채
온몸에서 출렁대는 살을 빼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웃기는 세상
웃기는 나라에서 날마다 느끼는
웃기는 혼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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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모임의 폼나는 이름 대신
"한배새끼회"라고 원색적인 이름을 붙인 동기 모임이 있다
이젠 긴 시간들을 정리해야 할 때,
눈 수술을 했다거나
당뇨가 있다거나
혈압이 너무 높아서...젊었던 시절처럼 술잔이 난무하는 요란함 대신
손전화 화면마다 손자 손녀들을 꽃처럼 담아 다녀야 하는 사람들,
그 시간들이 너무 무거워서
내 술잔은 철 없이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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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도시의 이름들은 다분히 정치적인 분류일 뿐
어느 도시든
그렇고 그래서 그게 그거인 풍경과 사람들,
조금 더 삭막해지고
조금 더 치열해 보이는 내 살던 안양의
낯 설어진 거리를 지나며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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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밭은 아주 아작이 났다
그 속에서 고라니의 아량으로 얻어진 배추 한포기를 씻어 저녘상을 차렸다
벌레 먹고
고라니 먹고
그 다음 남은 것이 내 차례
비 그치면
죽기 살기 맞짱을 떠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