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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밀리쯤의 찬비 예보는
양치기 소년의 늑대 소식이 되고 말았지만
점심 무렵부터는 제법 사나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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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 오두막 가난한 뜨락엔
겨울 같은 가을과
가을 같은 겨울이
꼬마 회오리바람 안에서 난장의 맴돌기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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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들 속절없이 떨어져 내리던 시간
사람의 가슴도 속절없이 무너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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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도시기피증이 있음에도
요즘 툭하면 서울 갈 일이 생겼다
몸 속 깊은 병을 다독여야 하는 가까운 이를 보기 위함이나
기차와
병원에 이르기 전 길가의 헌책방들이 제법 위로가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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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차들이 미어터지는 길들과
어깨 부딪히도록
수많은 사람과 사람, 소리와 소리가 뒤엉킨 먹먹한 거리와
구부정하게 유기된 비굴한 노년과
잠입하듯 뒷골목을 찾아
벽을 보며 홀로 먹어야 하는 비정의 한그릇 밥과
사람이 많아 사람의 정이 그리운
요란
소란
찬란
문란
광란의 막막한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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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의 무서리 끝에 된서리가 내린 날
비로소 고구마를 캤다
서리맞은 고구마의 맛
시원달콤 하겠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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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고도
세시간여를 땀흘린 끝에 올해 마지막 고추를 거두었다
아침 저녁으로 겨울이 넘싯거리는 이 계절에
도대체 이 무슨 뒤죽박죽 농사질(?)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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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걷거나 선 자세로도 절대 할 수 없는 일이거늘
날아가면서 똥을 쌀 수 있는 새들의 절대신공,
머리 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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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살이 중에도
아내의 겨울준비로는 데크위의 화분들을 볕 바른 창가로 들이는 일
물 속에서 물 마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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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린 서리 내리는 밤마다
장작불로 따듯한 구들방 아랫목에 찰싸닥 들러붙어 잠드는 일
뒷산 깊은 곳에서
콩 콩 여우라도 울어주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