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감자 밭에서 기진하다

햇꿈둥지 2009. 7. 27. 11:42

 

 

 

 

 

 

감자를 심을 무렵에 우리들은 무척 의기양양해 있었음에 더 해

올해는 감자에 치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에 심취해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아랫밭 이장네 보다도 몇일 이른 심기와 밭고랑에도 일찌감치 비닐 차양막을 덮어서 잡초를 원천 차단해 버렸으므로...

 

그러나

감자가 싹이 나고 잎이 나고 꽃을 피워 갈 무렵부터 주말이고 주중이고를 가릴 것 없이 장마란 놈이 남과 북을 오르내리며 비를 뿌리는 통에 겨우 주말에나 시간이 나는 우리들은 툭 하면 빗속에 갇히고 말아서...결국은 감자를 거두어야 하는 시기를 놓쳤다는 것,

장고 끝에 악수 나온다고

어제 한낮

구름 사이로 가끔 햇살이 보이기도 했을 뿐더러 그제 내린 비에도 그럭저럭 밭 흙이 마른듯 하여 점심 무렵에 호미를 들고 밭에 오른 시간이 오후 한시,

시골에서 농사로 도가 트신 분들조차 피하고 마는 가장 뜨거운 시간에 철딱서니는 물론 개뿔도 모르는 날나리 부부가 호미 두개 달랑 들고 밭에 들이 덤볐는데

눈을 뜰 수 없도록 쏟아지는 땀 속에

간헐적으로 느껴지는 어지러움,

지구가 돌고 있기 때문에 느껴지는 증상 일거야...이렇게 벌거숭이가 되어 세번의 물을 뒤집어 써 가며 감자를 캐다가...결심 했다

 

이렇게 피땀 흘려 거둔 감자를 꽁짜로 처제들에게 준다는 거야?

내가 우리 엄마 제사상에도 안 올릴거야...

그렇게 초 죽음이 되어 땀 씻고 잠시 까무러쳤다가 깨어나니 온 몸은 매 맞은듯 아프고 배고픔이란 것이 숨도 쉴 수 없을 지경인데 도무지 안경이 보이지 않는거라

 

여기 저기 구석 구석을 뒤지다 보니 이런 우라질,

조카녀석들이 억지에 억지를 부려 받아 들였던 강아지란 놈이 제 집으로 물고 들어가 안경 다리를 아주 아작을 내놨네 그려~~~

 

어쨌든 감자가 거두어지고

올 한해 농사의 매듭 몇개가 지어져서 감자는 박스마다 그득히 담기고

정자 시렁에는 마늘이 주렁 주렁 걸려 있다는 것,

 

비누 거품 희디희게 뒤집어 쓰고 거울을 보니

검붉게 익은 초로의 얼굴

바람 빠진 풍선처럼 마주 서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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