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볔, 매케한 냄새에 잠을 깼다. 이 나라 허공의 냄새는 이러한가?
마을 둘러보기를 위해 나설 때 바람 상냥했으므로 우리나라 가을 날씨 정도? 반바지에 반팔 차림으로도 충분히 견딜만 했는데
길에서 마주치는 이곳 사람들의 모습이 완전 중무장 차림이다
긴옷에 털모자 귀마개까지.
내 몸안의 온도 감응 장치가 고장난거? 온도를 확인해 보니 26'c 였다
더구나 자기 집앞을 쓸어 모아진 쓰레기는 비닐이 됐든 종이가 됐든 헝겊이 됐든 너도 나도 그 자리에서 태우고 있었고
그토록 싸매고도 옹기종기 모여 곁불로 쬐고 있었다.
이 연기가 마을 전체를 감싸고 있으니 그 매케한 맛의 발원이 아침 청소를 하는 곳곳임을 알겠더라
아잔타 가는 길,
아잔타와 이 후 가는 어느 유적지든지 직접 여행 기회를 통해서나 인터넷 또는 책을 통해서 얼마든지 볼 수 있으리라
그러므로 사람의 거리 속에서
그들이 살아가는 일상 속에 들어가 어울려 손잡음으로써 눈빛과 체온을 나누고 싶었다
중간 중간 지워진 곳이 더 많고 남아 있는 곳조차 흐릿하기는 해도 차선은 있었다.
이거는 완전히 사고다...하여 비명을 쏟아 낼 상황인데도 운전하는 친구 한손으로 여유만만 제 길을 가고 있다
운전이 아니라 마술이다
2차선의 도로를 3차선 때론 그 이상의 차선으로 확대하여 사용 하거나
차와 차 사이를 간격이 아닌 간극의 미세한 틈새로 활용하는 화려한 마술이었다 .
더구나 노면 이라는 것이
포장은 되어 있으되 비포장의 효과를 내는 이상하고도 신기한 현상,
화장실을 핑계로 아잔타 가는 길 중간에 시골 장터를 둘러 보기로 했는데
마치 오랜 시간을 기다렸던 것 처럼 맨발로 달려와 내 품에 안겨든 아이, 이름이 니주완 이라고 했다
꼬옥 끌어 안은채 오래도록 가슴 콩닥 거렸다
호박같이 생긴 빠빠야? 두개와 포도와 석류와 사과를 한아름 샀는데
우리 돈으로 한 7.000원쯤? 두고 두고 쉬엄 쉬엄 달콤한 간식거리가 되었었다
저 커다란 빠빠야는 들고 다니다 다니다 칼라푸르로 가던 Sleeper bus 화물칸 안에서 납짝콩이 되는 바람에
길바닥 멧돼지 제위께 헌납 되었지만...
아잔타 입구 주차장에서 셔틀버스로 갈아타야 한다는데 이 차 굴러가긴 하는걸까?
녹슨 정도야 그렇다치고 군데군데 기운 자국?까지 있는 버스를 15루피의 요금을 내고 10분 가량 들어가니
아잔타 석굴에 앞서 워쩐 수정 조각을 선물이라고 건네며 "이름이 뭐냐? 나는 몇번 가게를 하고 있는 누구이다 나오다가 꼭 들려서 기념이 될 만한 좋은 물건을 사가기 바란다"는 거리 상인들이 한명에 한사람씩 매달려 늘어진다.
짧은 한국말이 제법 섞이는 걸 보니 한국 관광객들이 참 많이 다녀가시는 곳임을 짐작 하겠다.
이곳에서
우리의 c선배께서 청사에 길이 남을 만한 업적을 남기셨기에 자세히 소개하여야 하나
사건의 정황상 앞뒤의 조화를 위해 엘로라 석굴 뒤의 기록으로 돌려두고자 함이라...
아잔타 끝부분에서 찍은 전경,
미련스럽게 모든 석굴을 들락거리는 중간 중간 이 넓은 석굴지대에 딱 하나밖에 없는 화장실도 들락거렸으며
수학여행을 온 아이들과 사진 찍고 희희덕 거렸으므로 무려 다섯 시간이 소요 되었다
사진에 보이는 것 처럼 불상 앞 어디에도 불전함이 없다
그런데 관리하는 친구들이 유독 한국 관광객만 보면 호위하듯 불상 앞 다른 사람들을 물리친 뒤 아주 친절하게 안내를 했었다
연유인즉,
불교 신자 단체 관광객들이 몰려와 예불 뒤 놓고가는 불전에 맛을 들인 이 친구들
관광객들 돌아서기 바쁘게 몽땅 걷은 뒤 다른 한국 관광객이 나타나면 어김없이 다가가서는 루피나 달러와 환불을 요구했다
그 틈새 안 봤으면 싶었던 장면 하나,
한국의 어느 도시에서 왔노라는 보살님들이 단체로 나타났고 맨발로 출입해야 하는 석굴들,
나와서 모두들 내 신발을 찾아 신어야 하는건데
관절이 고장 나신걸까?
주지 스님으로 보이는 스님 한분, 뒷짐 지은채 멀쩡히 서 계시고 두분의 보살님들 신발 뒷굽을 각각 꿰어 드리느라 엎드려 힘쓰고 계시니 보는 내 마음이 몹시 민망하더라...
아잔타 석굴 역시 세계문화유산의 하나,
사람의 출입을 제한 하기 위해서 이거나 어떤이는 박쥐를 막기 위해서라고도 하더라만
석굴마다 설치되어 있는 나무 문의 시각적 삐그덕 거림과 함께
보수를 위해 시멘트 범벅을 해 놓은 곳곳은 저으기 실망스럽더라
이런 상황,
수학 여행 온 아이들이 떼거리로 매달려 "원 포토"를 외치는 통에 불나던 발바닥은 잠시 쉴 수 있게 되었으나
한 무더기 끝나고 나면 또 한 무더기 덤벼 들고...
급기야 인솔 교사께서 호루라기를 불고 회초리를 휘둘러 상황은 정리 되었는데
그 다음,
"이제 아이들 쫓아 버렸으니 우리도 같이 찍자"...는 말씀,
처음 아잔타를 들어갈 때 만난 거리 상인에게는 내 이름을 그저 "순이"라고만 가르쳐 줬었는데
이 사람 끝까지 "순이~ 순이~"를 애잔하게도 부르며 쫓아오더라
잘 있어요 아잔타!
그리고 눈 깊은 모든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