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대동계

햇꿈둥지 2006. 12. 20. 17:37

 ㅁ.

마을 회관에 저녘마다 불이 켜지고 있다

마을의 공식적인 겨울 방학 돌입을 의미한다

모여서

10원짜리 고스톱 이라든가

할마씨들의 손으로 빚은 만두나 이런저런 부침에 곁들여 소줏잔을 기울이다가 한껏 흥이 돋구어지면 늘어지고 늘어지되 구성진 옛가락을 틀어 놓고 덩실덩실 어깨 춤을 추기도 한다

 

마을회관 안에 방이 세개이니

큰 방은 남정네들 고스톱 방으로

가운데 방은 할마씨들 모여 테레비 연속극을 보거나 10원짜리 고스톱이나 민화투를 때리다가 편한대로 누워 낮잠을 자기도 하다가...그러다가 술잔이 돌 무렵부터 춤판이 벌어지기라도 할라치면 남녀합동짬뽕판이 되어 돌아 간다는 것이다

 

이럴노무 걸

애초부터 한방에서 때리면 안되나?

 

아무래도 내 눈에는 내숭...

 

 

ㅁ.

아아~ 이장 이래유~

 

모처럼 마을 이장이 목에 힘들어 간 소리로 동네 마이크를 잡았다

오늘은 마을회관에서 동네 대동계가 있는 날이니

문화와 예술을 사랑 하시는 마을 주민께서는 집집마다 따로 저녘 해 먹을 것 없이 마을회관으로 모여서 일잔 빨아가며 몽땅 파 먹은 한해를 결산하고 또 다시 맞이하는 내년 한해를 어떻게 파 먹을 것인지 머리를 맞대고 의논해 보자...

 

모 방송의 요지는 대충 이러함에도

느려 터지게 이 말 저 말을 짬뽕으로 늘어 놓다가

전기세 많이 나오라고 재탕으로 또 때리므로써

평소 들어 보지 못하던 이노무 기계음이 지엄하신 이장님 목소리란 걸 알 까닭이 없는 싸가지없는 동네 개들이 목젖 빠지게 짖어대고 싸움나도 말릴 사람 하나 없던 동네 고샅이 잠깐 부산해진 뒤에

드디어

드디어

해 넘어 가기를 맞추어 성황나무 아래서 마을 고사를 지내고

술과 괴기와 떡을 풀어 상을 준비하면 본격적인 대동 싸움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곳으로 이사를 해서 살아 온 날이 10년이 넘었으니 열번 넘게 대동계 참석을 해 온 셈인데

이 어찌된 노무 대동계는 노다지 대동 싸움판이 되어 가지고는

이놈 저놈 이장놈 반장놈 할 것 없이 도마위의 생선처럼 난자되기 일쑤요

이에 대한 반격으로 욕설이 난무 하다가

뭐 그러다가 그러다가는... 

술이 몇순배 돌고 꼬물딱지 녹음기가 발악하듯이 음악을 토해내기 시작하면 그저 아무 지랄 없었던 것처럼 몽땅 하나가 되어 춤판이 된다는 사실을...잘 알기 때문에 나는 이제 그윽히 취한 눈으로 이 광경을 관조 하다가 슬그머니 자리를 털고 올라 오면 그만일 뿐이다

 

그날도 대동계는 대동쌈판이 되었고

새로운 상황은

아웃사이더인 줄만 알았던 내 마누라가 새로이 반장이 된 이의 허튼 소리에 코피 터지게 반격을 하므로써 마을 모든 사람 전원이 일치하는 티,케이오 승을 거두었다는 것,

그리하여 새로이 반장이 되어 목에 힘 좀 주려던 이는 꼬랑지를 바짝 내렸다는 것,

 

그날 밤,

술 취해 자고 있던 내가

미국놈 말과 조선말을 반반씩 섞어 잠꼬대를 했다더구만

 

"나이쑤~! 마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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