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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속에서도
인색한 햇빛을 모아 붉게 익은 자두는 가지 늘어지도록 가득인데
모처럼의 휴일 아침,
나무속이 하 수선스러워 내다 봤더니
떼거리로 몰려든 어치 녀석들이 홀라당 파 먹고 떨어뜨리고
떨어진 자두 속에는
얼씨구나 몰려든 말벌들이 코를 박고 있고
우라질...
자두 구경만 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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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속에 갇혀 있던 몇일 동안
밭이며 밭둑이며 마당에는
초록 공룡들이 점령군 처럼 진주 해 있어서
장차
치악산 호랑이들 새끼치러 몰려올듯...
밭가에서
만세 삼창이나 하고 그만 마음 정리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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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거둘 수 없는 미련 때문에
풀 밭을 헤쳐 늙어 빠진 오이 다섯개를 얻고
진딧물이 깨알처럼 박혀 있는 배추 몇개를 얻어서
노각 비빔밥에 행복한 우리들
잠시 볼이 미어지기도 했지
여전히 눅눅한 바람결엔
또
비가 온다는 전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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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이며 장독대 풀을 뽑는 사이
구름 사이로 언듯 언듯 비치던 햇빛은 어깨를 빨갛게 달구어 놓아서
마당가 맑은 샘가에 알몸으로 서 서
물장난 반쯤이 섞인 땀 씻기
"누구라도 올라오면 어쩌라고..."의 아내 걱정에
"원래 인류 최초의 의상은 나뭇잎 이었다네 샘 주변에 온통 나뭇잎이니 뭔 문제 있을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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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를 지난 날 부터 낮은 다시 제 키를 낮추기 시작했고
어둠의 틈새에서 명징하게 울기 시작한 풀벌레들
기어이
외로움에 감염되고 말 것 같은
예감...
허긴
누군가의 가슴속에 빠져 본들...여전히 외로웠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