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도
20호 남짓한 산골 마을은 명절 정적이 더 깊다
집집마다 평소에 보이지 않던 차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먼 대처살이를 하던 가족들이 모인듯 한데
그들의 귀향은 집집마다 문 닫은채 우리만의 굴레를 만들어내는 이유로 작용한다
두레와 대동이 사라진 시대
그 진공의 정적이 하도 갑갑하여
배낭속에 도시락 하나 담아 멘채 감악에 든다
명절 밑에
장맛비 처럼 쏟아진 하룻밤 하루낮의 비로
조용했던 계곡 물길이 제법 소란스럽다
명절 바로 뒤에 연이은 하루 더의 휴일로
산길은
혼자만의 호젓하고 소소한 길이 되어서
걷는 동안 만나지는 작은 물길마다 일일히 쉬어 물장난을 해도 좋았다
경사면 바위 위에 주저 앉듯 얹혀 있는 바위를 의지하여
이런 저런 풀들이 자라고도
소복하게 이끼가 돋아 있어
바위 위의 바위
산 속의 산
그 어울어짐이 조화롭고 신비하다
가을색 깊은 날엔
노을빛으로 붉어질 나뭇잎들,
마루에 올라서기 전 여전히 숨가뿐 능선 길에서
안개 속 의젓한 암릉을 만난다
산 아래 늦더위 아랑곳 없이
하늘과 맞닿은 감악마루에는 들국화 마음껏 피어나고
안개 자락 앞세워 갈기 세운 바람 속
혼란스럽게 뒤엉킨 가을과 겨울을 만난다
안개인듯 바람인듯
부서져 가는 거적문 처럼 함부로 여닫히는 안개 속에서
백련사 홀로
묵언의 자맥질을 하고 있었다
밧줄에 매달려 용을 쓴 뒤에야
안개 속 바위에 올랐다
엉덩이 걸칠 곳 조차 마땅치 않은 옹색한 자리에 엉거주춤 선 채로
사방 단애의 위태로움에 흔들리다가 문득 생각한다
살아 있는 모두에게
오늘이란 또 얼마나 빈약하고 위태로운가
너무 작은 것도
너무 큰 것도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으니
그저 무량할 뿐인 청맹과니의 날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