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토골 일기

스테파노 손바닥

햇꿈둥지 2020. 3. 1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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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거친 바람이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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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 가득

새 떼 같은 낙엽의

어지러운 군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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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내 침묵하던 나무의 몸을 빌어

허공 깊이 쏟아내던 바람의 언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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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둥지둥 겨울이 떠나고

점령군의 위용으로 봄이 들어서는 어수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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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것이 봄볕을 향해 열리고 있는데

사람의 거리는

여전히 폐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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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경운기를 되살려 밭 갈고

묵었던 씨앗을 모판에 넣던 오후

스테파노의 전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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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 넘고 넘어

물 건너 건너 깊은 산 중에

땔나무 열 차쯤을 모아 놓았으니 싣고 가라는 기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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땔나무 열 차쯤에

그의 애정을 스무 차쯤 덤으로 실어들인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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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손바닥 위에 근두운을 타고 맴도는 손오공처럼

스테파노 손바닥 위를 맴도는 산 중 건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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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도 모두 제 집으로 돌아가고

이런저런 일들이 제법 정갈해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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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볕 고운 자리에

낡은 탁자를 놓고

더운 차 한잔을 마셔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