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토골 일기
흐름, 안과 밖의 풍경
햇꿈둥지
2007. 3. 7. 09:29
ㅁ.
책 쌓인 방 한켠에는 피아노가 한대 놓여 있다
아이들 키울 때
바이엘이며 체르니며...그 안의 음표대로 또박 또박 소리를 내던 녀석 이었는데 요놈덜이 다 커서 밖으로 나간 뒤 부터 긴 시간을 묵언 수행 중 이었다
마침 직장 후배의 마나님께서 피아노 조율을 한다기에 억지 부탁으로 손질을 하게 되었는데
맙소사~
음이 안 맞는거며 건반 몇개가 주저 앉아 있는건 외관상의 문제 였을 뿐
피아노 안은 온통 쥐소굴이 되어 있었다
이럴 경우
기함을 했다...라는 표현은 적절하다
먼 길을 두번씩이나 왕복하는 수고로움 끝에 피아노는 비로소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제목이 뭔지는 알 수 없으되
창밖의 고드름처럼 맑은 소리들...
입대를 앞 두고 집에 내려와 있는 아들 녀석이 만들어 내는 소리들,
갑자기
가족 이라는 단어 하나 가슴에 고이고
밖의 찬바람에도 불구하고 나는 따듯해지고 있었다
ㅁ.
마당 끝 풀섶은
앙칼진 바람이 부는대로 아무렇게나 흔들리고 있었다
가끔
정갈하지 않은 마당을 가로 질러 갈색의 나뭇잎 하나가 비틀 비틀 굴러 가기도 했고
나무들은
고장난 시계의 바늘처럼 굳은 모습으로 하늘 깊이 박혀 있었다
모든 것이 정지해 있어서
그리움 조차 정지해 버린 것 같이 그 누구의 이름도 떠 오르지 않았다
문득
풀숲에서 일어선 한떼의 나뭇잎,
조롱 조롱 이슬 방울같은 언어들을 쏟아내는 박새떼 였다
모든것을 꽁 꽁 얼어붙게 하던 겨울 찬바람 속 에서도
작고 작은 온기를 품고 있던 하늘의 심장 이었다
任自然...
해가 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