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아름다운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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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길을 재촉해
해거름 전에 당도한 산골
가뭄 자락에 온몸이 시들어가는 애처로운 녀석들을 끌어 안아
물 주고
더러 병반이 매달리는 초록 등짝마다 살충제 뿌려 주는 사이
서산 그림자가 훌쩍 어둠 되어 들어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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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비밭 삐딱 이랑을 옹골지게 일궈내던 제석 할아버지는
푸르고 싱싱하던 관절이 우수수 무너지던 날 부터 은퇴 농부가 되었고
종일토록 밭가에 나앉아
젊은 이장의 트랙터 꽁무니에 눈길을 걸어 두고 산다
불확실한 현실을 떠받들어
산개된 과거를 꿰어가는 일...
기대어 앉은 고목의 대추나무 가지에
가끔
까마귀 쉬어 가는 산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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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수술 전
어쩌다가 티비라도 볼라치면
볼륨의 적정 수치는 약 20정도 였으므로 아예 0에 놓아 버렸었는데
수술 이 후
가능 수치가 7, 8 선으로 낮아졌다는 것,
그런데 그노무 소리들...
들어 보니 그저 소란스러울 뿐
다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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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 익어가는 동안
밭고랑 심겨진 작물들이 초록 무성하게 일어서고
옥수수들은 제법 우쭐한 제 그늘을 거느려간다는 것,
그 틈새
몰래 몰래 제 집 지어 세 불리기에 여념 없는 벌들...
추녀끝 깡패 벌집을 떼어 버렸더니
제 집 있던 자리에 염불하는 모습으로 옹송옹송 모여 사람 미안케 하는 녀석들...
우리
왜 이런 인연이 되어야 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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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둥치에 얻어 맞아 퉁퉁 부은 손가락을 다독거려 겨우 잠 들었는데
잠결에 아내의 팔꿈치에 얻어 채인 자리가 꼭 그 자리,
혼비백산하여 잠에서 깨어
어른 어른 초록 불빛이 명멸하는 창가에 매달려 보니
구월 이 후 늘 늦게만 만나지던 반딪불이들
연록의 불빛이 하도 반가워
어지렁 뜨락을 배회하던 새벽 두시의 아름다운 어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