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악 품에 들다
도시살이 시절,
부부가 몽땅 산에 미쳐 계절은 물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승냥이와 여우처럼 산을 드나들다가
필연의 귀결,
이곳 치악자락으로 서식처를 옮긴지가 어언 15년인데 되게두 웃기지...
이날껏 치악 꼭대기에 오른적이 없다는 것,
그리하여
치악에 들어 비로를 둘러 본 뒤 치악 허릿길로 넉넉히 하산 하리라...
죽는 줄 알았다...
치악에 들었던 날이 벌써 20여년 전이니 몸의 낡음도 그러려니와
오르고 올라도 정상이 가늠되지 않는 온통의 계단 길,
중간 중간의 사진들이 몽땅 생략 되었음은
코 끝
턱 밑
심지어는 모자 챙 끝으로 까지 땀줄기가 흘러 내렸으니 카메라가 있는지...
그저
코 앞을 보며 오르는 일만으로도 힘겨웠다.
오지랖의 문제...
땀에 절어 쉬고 있던 오산에서 왔노라는 젊은 산객
아내는 앞서 올랐으나 그만 되돌려 내려가야겠노라는 대답과 "매일 술 이라는..." 풀 죽은 소리에
나는 일주일에 8일을 마셨노라...고 부추겨서는
물과 커피를 한잔씩 나눈 뒤에 기어이 손잡아 동행을 했다
잠시의 소원(疏遠)
그 동안 저 아래 사람의 거리에 푸르고 젊은 시간들이 낙엽처럼 소진되어 버린 것...
산천은 의구하고...
짙은 안개로 시계 제로
어인 일로 파리들은 그다지도 극성스러운지
모두 사람으로 비롯된 일이겠거니...
치악의 마루를 더듬어 입석대로 하산 하던 길
편안한 바위 한켠을 빌어 점심상을 차렸다
스스로 가꾼 채소들이 하도 장하여 이른 아침에 준비한 산중 쌈밥 그리고 소주 한잔,
마루를 내려서는 계곡 길에서 다시 무릎 통증...
젊은 날들 얻어서 끌어 안았던 증상들이 낡은 시간 속에서 다시 살아난듯,
입석사 계곡물에 두발 담근채 냉욕으로 풀어내고 허위허위 당도한 황골
버스 기다려야 하는 잠시의 시간을 이용해 기어이 "황골막걸리" 한주전자를 끌어 안았는데
세잔쯤 마셨을까???
지독히도 독한 술...
까무러치듯 잠든 밤
밤새 뇌우 내리시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