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하이브리드 태양초

햇꿈둥지 2020. 9. 14. 17:16

 

 

#.

비 속에 거두어진 첫 거둠 고추들은

어쩔 수 없어

건조기로 말려야 했다.

 

#.

두 번째 거둔 고추는

반쯤은 건조기로

그리고 나머지는 햇볕 말림으로,

 

#.

문제는

말라가는 고추의 향기는 물론

마른 모양도 차이가 있다는 것,

 

#.

그리하여

세 번째 거둔 고추들은 몽땅 볕 좋은 지붕으로 올라가

오로지 햇볕 말림을 하겠다고

흐린 하늘 잠깐 소나기라도 지날 양이면

동춘서커스 곡예 단원처럼 사다리 오르내리기를 하는 중,

 

#.

고추 전용의 비닐하우스 하나를

지어야겠다는 생각

꿈속에서도 옹골지다.

 

#.

어쨌든 며칠

하늘은 푸르러서

햇살은 또 셀로판지처럼 투명했으므로

아내의 소원대로 고추는 말라가고 있는 중,

 

#.

시대적 트렌드에 맞추어

올 추석에는

가지도

오지도 말자고 모두에게 알렸으나

길고 긴 연휴에 딱히 할 일이 없으므로

기어이 내려가겠노라는 며느리의 전화,

 

#.

산삼 열 뿌리 먹는 것보다

시집에 한번 덜 가는 것이 몸에 좋은 것 임을

그토록 일렀건만,

참 이상하신 며느님,

 

#.

청소를 겸해

거실부터 이 방 저 방 모두

가구 바꿔 놓기

방향 돌려놓기

그리하여 앉은자리마다 산과 마주 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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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생전에

지극 정성으로 가꾸시던 코딱지 꽃밭에서 옮겨 심은 협죽도가

가을 하늘 아래 화들짝 하다.

 

#.

꽃말이

주의, 방심은 금물 이라 하니

이 시절의 코로나 사태를 알려주려 하셨음일까?

 

#.

하루하루

온도계의 수은주가 쪼그려 앉기 시작하였으므로

이른 한나절 땔감 손질로 구슬땀,

 

#.

고목의 둥치를 베는 동안

나무들은

오래 전의 바람과 전설 같은 산 이야기들을

선혈 같은 향기로 쏟아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