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토골 일기

작은 것들로 봄,

햇꿈둥지 2020. 4. 13.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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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도 어느새

열사흩날을 지나건만

산골의 아침 바람은 한겨울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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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덕 같은 봄볕에 홀려

허공을 기웃거리던 목련과 진달래 꽃들이

아침마다 쏟아지는 표창 같은 서리에

제대로 피지도 못하고 늘어져 버렸는데

그중에 게으른 꽃망울 몇이 있어

다시

조심스럽게 방창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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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 가득

워낭소리 대신 기계음이 소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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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으로 거름을 내어

굴삭기로 펴고

트랙터로 갈아

관리기로 이랑을 지어 싹이 난 뒤면

분무기로 농약을 뿌릴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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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한(不汗) 농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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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를 몰아 밭을 갈던 이들은

대부분 밭둑으로 내 몰린 퇴역 이거나

밭 한 귀퉁이 유택에 감금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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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나이 많은 이에게

물을 수도

물을 것도 없는

기계적 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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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農事)가 아닌

농사(農死)가 되었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이 땅에서 먹을 것을 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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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때문에

아이들을 맡아주던 시설들은

기약 없는 휴지기에 들어가서

젊은 엄마들은 감당 불가 상황이라고

꽃 같은 아이들과

어지러운 여러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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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걸음이 서툰

작은 사람들과  손 잡아

땅 위를 더듬더듬 걸어야 했던 날 동안

돌 틈새 이거나

누추한 구석 자리를 마다하지 않고

조그맣게 겸손한 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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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들로도

화려한 봄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