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길을 묻지 않아도 된다
이젠
아무리 길치라도 낯선 길을 두려워 하거나
그 낯선 길 위에서 발걸음을 멈춘 채 내 갈 곳을 물을 필요가 없는 시대가 되었다
넘치는 차 마다 네비게이션을 달아 놓고 썪기 직전의 통나무 껍데기 처럼 말라 비틀어진 안내 음성에 따라 코 앞만 보고 내 달리면 그만이다
빨간색으로 선명하게 표시되고
그것만이 목적지에 이르는 유일한 좌표라고 믿으며 그저 달리면 되는 것이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이라는 이 나라의 여유만만한 말은 이제 폐기처분 되었다
무엇 때문에 이 바쁜 세상을 모로 가고 지랄을 한단 말인가?
네비게이션도 없단 말인가?
우리 모두가 학삐리 였을 때
그저 구구로 교과서 안에 얌전히 갇혀서 일 더하기 일은 죽어도 이다
교과서의 테두리 안에서 정리되고 강요되는 것 외에는 생각하고 행동하지 말아라
어쩌다 마음씨 좋은 선생님을 만나 쪽집게 무당이 찝어주듯 갈촤 주시는 시험 범위 밖에 것은 보지도 외우지도 말아라
어떠냐?
내가 정 해준 시험 성적 이라는 잣대 안에서 네 길이는 도대체 얼마나 되느냐?
우등생 이로다
장래가 촉망 되는구나
이런 우라질 놈
맨날 딴짓거리 딴생각에 날나리 농뗑이나 치더니 빵점 이로구나
싹이 노랗도다
이 시대가 정한 교육적 테두리 안에 머무는 자는 장래가 촉망 되느니 장차 기름진 밥상과 학벌 좋고 인물 고운 마누라를 보장 받을 것이요
그렇지 않아 꼴리는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자는 불 심판을 받을 것이요 이 시대의 밑바닥과 배고픔이 너희를 기다릴 것이다
코 앞만
교과서의 활자만...보고 외우고 실천 하라
모로 가면 언제 서울을 갈거냐
내가 가라는 대로만 가라
멀미 나도록 건조한 세상,
바람 사운 거리고 봄이 오듯 새 소리 낭낭한 샛길은 표시도 안내도 되지 않는, 빨리 빨리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는 시대
낯 선 길에 차를 세우고 처음 만난 그에게 정중하게 길을 물을 필요가 없는시대
사람으로 살면서 사람과의 교류가 필요 없는 시대
드럽게
맛대가리 없는 세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