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 수리 후기
#. 1
병원 창밖의 아카시아 꽃이 시름 없던 날
수염터가 새파란 젊은 의사는 무려 세시간 동안
남의 귓구멍에 구멍 뜷어
드릴질
칼질
망치질을 원없이 해대는
의술 이라고 부르는 마술 뒤에
수술 끝 선언과 함께 절대안정의 주문을 걸었으므로
나는 빈둥빈둥 꼼짝없는 시간들 속에 갇혀 버렸다
#. 2
안정이 치료...라는 히포크라테스의 잠언 같은 말씀을
약봉지와 함께 싸준 주치의의 말씀대로 퇴원은 헀으나
소토골 가득
농 익은 봄볕 아래 유기되어 있던
밭뙈기에
똥개며
이런 저런 일들이
발등
어깨
허리
등때기 가릴 것 없이
결딴난 구멍가게에 빚쟁이 달라붙듯이 매달리는 통에
그날부터 아주 찐한 마당쇠
그것도 농사철 마당쇠,
퍼즐을 맞추듯
빈밭을 씨앗과 묘종으로 채곡히 채우는데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문디 한밤중에 애 낳아 씻기듯
더듬더듬 설치한 비닐하우스 속 점적 작업이 압권,
#. 3
늙은 스님의 독경처럼 울어대던 뻐꾸기와
꼬끝 어찔하게 몰려오는 찔레꽃 향기와
간간이 목덜미 어루만져 지나는 초록 바람,
이 산 속 살아 움직임이
모두 행복해진다
그게
땀 흘려 해야 하는 일이라 해도
#. 4
마누라 신났다
비닐하우스 옮겨졌지요
마당쇠는 갑자기 휴가라지요
거기에다가 알아서 척척 일 잘 하지요
그저
이것 저것 왼갖 모종을 사들여서
심어
심어
주문만 하면 되지요
덕분에
올해 처음 가게 문을 열었다는 촌동네 종묘상 아줌니만
노났다
#. 5
봄 되기 전 부터
그토록 성실하게 지어 알 품었던 박새 둥지가 텅 비었다
쓸고 닦고 어루만져 매물이 되지 않는 새 둥지와
쓸고 닦고 어루만져 애물이 되고마는 사람의 둥지
#. 6
마당가
돌 틈새
밭가장자리
그저 아무 곳에나
성의없이 쑥갓 씨앗을 뿌렸다
곱게
꽃 피우라고
#. 7
먼 곳의 블로그님께서
가슴 한쪽을 떼어주듯 보내주신 램프에 불 밝힌채
어두움 속살 깊이에서 그림자로 흔들리는 일
또 다른
한밤중 놀이가 되었다
#. 8
너른 창가로 잠 자리를 옮겼다
잠박 위의 누에처럼
한잠
두잠
.
.
막잠의 도막 잠 끝에
명주처럼 푸르고 뽀얗게 열리는 여린 새벽
그 새벽을 들춰
초록 가득한 내 뜰에 들어 서는 일
여전히 5월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