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토골 일기

유상 수리 후기

햇꿈둥지 2012. 5. 26. 03:47

 

#. 1

병원 창밖의 아카시아 꽃이 시름 없던 날

수염터가 새파란 젊은 의사는 무려 세시간 동안

남의 귓구멍에 구멍 뜷어

드릴질

칼질

망치질을 원없이 해대는

의술 이라고 부르는 마술 뒤에 

수술 끝 선언과 함께 절대안정의 주문을 걸었으므로

 

나는 빈둥빈둥 꼼짝없는 시간들 속에 갇혀 버렸다

 

 

 

#. 2

안정이 치료...라는 히포크라테스의 잠언 같은 말씀을

약봉지와 함께 싸준 주치의의 말씀대로 퇴원은 헀으나

소토골 가득

농 익은 봄볕 아래 유기되어 있던

밭뙈기에

똥개며

이런 저런 일들이

발등

어깨

허리

등때기 가릴 것 없이

결딴난 구멍가게에 빚쟁이 달라붙듯이 매달리는 통에

그날부터 아주 찐한 마당쇠

그것도 농사철 마당쇠,

 

퍼즐을 맞추듯

빈밭을 씨앗과 묘종으로 채곡히 채우는데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문디 한밤중에 애 낳아 씻기듯

더듬더듬 설치한 비닐하우스 속 점적 작업이 압권, 

 

 

 

#. 3

늙은 스님의 독경처럼 울어대던 뻐꾸기와

꼬끝 어찔하게 몰려오는 찔레꽃 향기와

간간이 목덜미 어루만져 지나는 초록 바람,

 

이 산 속 살아 움직임이

모두 행복해진다

 

그게

땀 흘려 해야 하는 일이라 해도

 

 

 

#. 4

마누라 신났다

 

비닐하우스 옮겨졌지요

마당쇠는 갑자기 휴가라지요

거기에다가 알아서 척척 일 잘 하지요

 

그저

이것 저것 왼갖 모종을 사들여서

심어

심어

주문만 하면 되지요

 

덕분에

올해 처음 가게 문을 열었다는 촌동네 종묘상 아줌니만

노났다

 

 

 

#. 5

봄 되기 전 부터

그토록 성실하게 지어 알 품었던 박새 둥지가 텅 비었다

 

쓸고 닦고 어루만져 매물이 되지 않는 새 둥지와

쓸고 닦고 어루만져 애물이 되고마는 사람의 둥지 

 

 

 

#. 6

마당가

돌 틈새

밭가장자리

 

그저 아무 곳에나

성의없이 쑥갓 씨앗을 뿌렸다

 

곱게

꽃 피우라고

 

 

 

#. 7

먼 곳의 블로그님께서

가슴 한쪽을 떼어주듯 보내주신 램프에 불 밝힌채

어두움 속살 깊이에서 그림자로 흔들리는 일

 

또 다른 

한밤중 놀이가 되었다

 

 

 

#. 8

너른 창가로 잠 자리를 옮겼다

 

잠박 위의 누에처럼

한잠

두잠

.

.

막잠의 도막 잠 끝에

명주처럼 푸르고 뽀얗게 열리는 여린 새벽

 

그 새벽을 들춰

초록 가득한 내 뜰에 들어 서는 일

 

여전히 5월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