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토골 일기

어쨌든 추석,

햇꿈둥지 2018. 9. 21. 03:45






#.

구월이고

가을이고

추석이었다.


#.

그리하여

독하던 더위도 가 버렸고

하늘은 가볍고 푸르르며

일년에 열두번쯤으로 느껴지는

단 한번의 벌초를 했다.


#.

가벼운 감기가 왔다.

그러나

추석에 올 아이들 때문에

두번이나 병원을 다녀왔다.


#.

아이들에게 옮겨서는 안된다는 

스스로의 의지보다 더 왕성한

아내의 강권에 등 떠밀려서,


#.

허리 굽은 사람들 모두 모여 마을 대청소를 했다.

아침 잠 없는 이들이

신새볔에 시작하여 두시간쯤 청소하고 

점심 때가 다 되도록 술을 마셨다.


#.

마을 입구에

"고향 방문을 환영"한다는 플래카드가 흔들리던 시간부터

바람처럼 굴러온 돌들은

 내 집에 누워 타향을 절감한다.


#.

예초기 한나절 돌린 이튿날의 붓글씨

피카소풍의 새로운 서법이 구현 되었다.


#.

젊은 의사의 처방으로 삼킨 알약 세개는

감기 치료보다

지구의 자전을 온 몸으로 느끼게 하는 효과가 더 커서

하루종일 어질어질,


#.

명절 때 마다 찾아 뵙는 두분

내 어머니 돌아 가신 뒤

스스로 엄마역을 자청하신 분들이다.


#.

오뉴월 하루볕은 아이들에게만 적용 되는게 아니지 싶다.

두분 모두

작년보다 훨씬 더 진한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

말하자면

- 애들도 모두 잘 있지?

같은 얘기의 반복,

- 그 얘기 금방 하셨잖아요

- 내가 언제 이 얘길 해 지금 처음한 걸...

그리고는 다시

어떻게 왔느냐는 거듭 말 안되는 궁금,


#.

세월

참 무겁다.


#.

떡과 전과 모든 명절 음식은

딱 차례상에 올릴 만큼만,

그리고도

슬림하고 슬림하도록 

살 수 있는 것들은 슬금 슬금 사 들이기

의욕왕성하게 차례상 준비 하던 것들조차 늙어 버렸음을

조상님들도 귀신같이 아실 일이니,


#.

휘영청 달이 뜰 것이고

휘영청 그리움도 뜰 것이므로

잊혔던 얼굴들이 또록 또록 되살아나는 잠시

어쨌든

추석 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