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추석,
#.
구월이고
가을이고
추석이었다.
#.
그리하여
독하던 더위도 가 버렸고
하늘은 가볍고 푸르르며
일년에 열두번쯤으로 느껴지는
단 한번의 벌초를 했다.
#.
가벼운 감기가 왔다.
그러나
추석에 올 아이들 때문에
두번이나 병원을 다녀왔다.
#.
아이들에게 옮겨서는 안된다는
스스로의 의지보다 더 왕성한
아내의 강권에 등 떠밀려서,
#.
허리 굽은 사람들 모두 모여 마을 대청소를 했다.
아침 잠 없는 이들이
신새볔에 시작하여 두시간쯤 청소하고
점심 때가 다 되도록 술을 마셨다.
#.
마을 입구에
"고향 방문을 환영"한다는 플래카드가 흔들리던 시간부터
바람처럼 굴러온 돌들은
내 집에 누워 타향을 절감한다.
#.
예초기 한나절 돌린 이튿날의 붓글씨
피카소풍의 새로운 서법이 구현 되었다.
#.
젊은 의사의 처방으로 삼킨 알약 세개는
감기 치료보다
지구의 자전을 온 몸으로 느끼게 하는 효과가 더 커서
하루종일 어질어질,
#.
명절 때 마다 찾아 뵙는 두분
내 어머니 돌아 가신 뒤
스스로 엄마역을 자청하신 분들이다.
#.
오뉴월 하루볕은 아이들에게만 적용 되는게 아니지 싶다.
두분 모두
작년보다 훨씬 더 진한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
말하자면
- 애들도 모두 잘 있지?
같은 얘기의 반복,
- 그 얘기 금방 하셨잖아요
- 내가 언제 이 얘길 해 지금 처음한 걸...
그리고는 다시
어떻게 왔느냐는 거듭 말 안되는 궁금,
#.
세월
참 무겁다.
#.
떡과 전과 모든 명절 음식은
딱 차례상에 올릴 만큼만,
그리고도
슬림하고 슬림하도록
살 수 있는 것들은 슬금 슬금 사 들이기
의욕왕성하게 차례상 준비 하던 것들조차 늙어 버렸음을
조상님들도 귀신같이 아실 일이니,
#.
휘영청 달이 뜰 것이고
휘영청 그리움도 뜰 것이므로
잊혔던 얼굴들이 또록 또록 되살아나는 잠시
어쨌든
추석 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