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어수선 동동 계절

햇꿈둥지 2019. 10. 22.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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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잃은 시월의 햇볕은

고추조차 변변히 말릴 수 없어서

번번한 뒤집기의 수고로움만 더 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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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햇볕 제일 좋은 장소를 골라

지붕으로 올라 가셨다


#.

사람 위에 지붕

지붕 위에 고추

그노무 태양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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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딱지 고구마 밭을 정리하고

다시

마늘 놓을 곳을 다듬고

무와 배추의 자람을 둘러 보다가


#.

봄 여름 지나도록 농사에 지친 몸

있는 힘을 다 끌어 모아 김장을 마치고 나면

허리 펴고 안도 할 새 없이 겨울이 들이 닥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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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으로 윤기 흐르던 두메 밭에는

스산한 갈색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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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동안거에 드시려는지

가만히 돌틈으로 사라지는 뱀의 꼬리

뒷산이 자꾸 헐렁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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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들 다 떨구고 난 뒤면

나는 어느 그늘에 숨어 눈물을 훔쳐야 하나


#.

나날이 푸석해지는 숲에서

버섯 냄새가 난다

썩은 나무등걸 조차 기어이 새생명의 태반으로 만드는

자연의 신비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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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파노의 갑작스런 제안,

뒷산으로 임도 형태의 길을 내겠다는거다

그리하여

매일 매일 낮잠이나 자고 있는 트럭으로

산 속에 누워있는 나무등걸을 모조리 줏어 내리라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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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날이

땔나무 걱정을 해 주다가

더러는 현장에서 구해지는 나무들을 실어 나르기도 하더니만

이제는

물고기를 잡아 주는 것이 아니라

나를

고기 잡는 어부로 만들 모양이다


#.

아무도 나를 기억해 줄 이 없음에도

때때로 가심팍이 시려드는 착종의 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