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쌈밥질

햇꿈둥지 2020. 6. 18. 04:36

 

 

#.

유월 푸른 날들이

꽃잎처럼 쏟아져 내려서

어느새 열여드레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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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새벽 운동 길엔

눈썹 같은

하현의 반달이 함께 걷고 있었다

 

#.

코로나 덕분에

긴 날을 자가 격리되어 있던 서실 도반들이

다시 뭉쳤으나

꽃 소풍도

봄바람도 모두 떠나버린 뒤,

 

#.

다시 모였음을 자축하고자

고요한 눈빛 모의로 날 받아

쌈 뜯고 고기 볶은 뒤

대동 단결하여 쌈밥질을 하기로 하였다.

 

#.

다 같이 잔을 높이 들어

소만큼 먹을 것이므로

글씨는 안 늘고 

뱃살만 늘을 것이다

 

#.

아랫집 할아버지께서는

가뭄으로 옥수수가 배배 돌아간다고 걱정 이시고

아랫 밭 친구는

마늘 알이 시원찮다고 하늘 우러러 원망,

 

#.

하느님 노릇 해 먹기도

참 쉽지 않으시도다

 

#.

밭고랑의 풀들은

언제든 비만 오시면 뜀박질로 자랄 기세인데

가뭄에 눌리고

풀에 치인 작물들만

더운 바람 속에 마른 몸을 뒤틀고 있다

 

#.

마을 경로당이 다시 문을 열었다고

유모차에 매달리거나

더욱 튼튼해진 지팡이 앞 세우신 할머니 몇 분이

집 밖 거동을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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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땅으로 굽혀 굽혀

기어이 되돌아 가야 할 길,

 

#.

오랜 시간 묵언 수행 중이던

할머니 방 티브이는

백세시대를 위한 장수식품 선전으로

소란 소란하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