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토골 일기

시월 풍경,

햇꿈둥지 2012. 10. 8. 10:29

 

 

 

지독히도 더웠던 여름은

다시 전설이 되고

시린 이슬 모아 꽃 피운 가을,

 

 

성큼 높아진 하늘을 오르다 지친 유홍초 손길

욕망이 멈춘 그 자리에

가을조차 기진해 버렸다.

 

 

산골 가을은 고운 단풍에 앞서

낙엽 깔고 오시는지

숲 사이가 헐렁해지고 그 사이 모서리 날카로운 바람이 일어서던 날

작고 비탈진 마당을 쓸어 불 피웠다

푸석한 산그늘로 흩어지는 훈향

가을은 자꾸 서럽다

 

 

화살촉 홑잎이 제일 먼저 불타기 시작한 산골

저토록 고운 색깔이 어디 숨어 있었는지

바쁜 몸을 멈춰 하염없이 서성였다

 

 

게으르고 게으른 농사질

다섯시간쯤의 땀 흘림 끝에

다섯 자루 가득 고추를 거두었다

 

반건달에

반푼수 짓의 결과이니

횡재 아니면 도적질이 맞겠는데

이꼴에 오지랖은 여전해서

언니 몇근

동생 몇근

조카 몇근에

시집 보낼 딸놈 몫 까지를 손 꼽아 헤아리다가

명 짧은 햇님은 서산에 걸어 두고

 

 

정자에 걸어 둔 자루 속에는

오동통 여물었던 지난 여름이

미이라 같은 몸으로 박제 되었다

햇빛 식어지고

지친 몸으로 산그림자 누운 뒤에

등지느러미 날카로운 바람이 기어이 문풍지 좁은 틈을 밀고 들어서면

이내 겨울

 

마을과

집들과

허리 굽은 사람들이 고요 속에 침잠하여

깊은 겨울잠에 들게 될 것

 

그러나

초록 약속이 새순으로 돋는 날

모두들 아지랑이 처럼 일어서서

그들의 남은 날들을 성실하게 경작하게 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