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토골 일기

시월 넋두리

햇꿈둥지 2018. 10. 6.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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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남쪽 바다를 지난다는 태풍 소식은

이틀을 쉬지 않고 내리는 찬비로 당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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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이 그리움 되도록

찰박 찰박 젖은 걸음으로 가슴깃을 파 헤치는

가을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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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가 그치고 나면

본격적인 겨울이 될 것 이라고

건달 바람이 추녀끝 풍경을 걷어차며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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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날 딱 좋은

아주 오래된 목욕탕이 하나 있다.

남루한 도시 귀퉁이에

아주 오래된 간판을 약간 비스듬히 매단채

초로의 쥔 남자가 긴 하품으로 드문 손님을 기다리는 곳,

그리하여

사람들로 북적이기 보다는 혼자이기 일쑤인 곳

더러는

탕 안이 조금 춥기도 하지만

혼자 일 수 있다는 것이 매력이 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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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을 끝낸 어느날

문득 회색빛 무거운 하늘이 마술처럼 흰눈을 뿌리면

겨우내 불목하니나 되리라

추위보다 먼저 얼어붙어 버려서 정물처럼 요지부동인 마을 가운데로

유일한 동사가 되어 너울 거리는 굴뚝 연기를 봉화로 올려

가끔

나 살아 있음의 안부도 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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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색감이 요란 할 수록 홀로의 외로움이 커지는 산골

멧돼지와 고라니와 산토끼와 소통 할 수 있도록

되도록 간결한 마음으로 수화(獸話)를 익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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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참 외로운 계절이다.

개인사 부터 마을과 도시가 통째로

모임과 행사와 축제를 하겠다고 시끌벅쩍 요란하다.

그렇게 요란스러워 봤자

우리 모두가 맞이 할 건 침잠의 겨울

결국

다시 외로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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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며느리의 남편으로 변신한 첫 아이를

손수 받아 주시고 귀여워 하시던 처형의 칠순

모인 모두의 온몸에 세월의 무게가 진득하다.

아이들 결혼부터 회갑에 이어 칠순

그런 순서들로 이젠 보내거나 떠나는 자리에서 만나질 것이다.

건강(健康) 아닌 건세(健歲)를 축원했다

필멸의 목숨으로 불멸을 꿈 꾸며 사는 우리 모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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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

여전한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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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가

불면의 원인이 될 수도 있음을

말똥말똥 깨우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