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토골 일기
세월의 힘,
햇꿈둥지
2025. 5. 15. 05:02
#.
아내의 일은
병 이기보다는 사건이었다.
#.
놀라고 허둥대던 파행의 시간들이
흐른 만큼 치유되어
이제 아내는 다시 운전을 하고 싶어 할 만큼
철없는 상태로 회복되어 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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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사이마다 습진이 생기고
별스럽지 않은 내 일상이
번잡 말고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이 헝클어졌으나
#.
우리가 보험이예요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저희들 손을 잡고 가시면 돼요...라고
고도 지능의 사기꾼처럼 말하는
아이들과의 관계 밀도를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
더더구나
매주 멀고 불편한 길을 달려와
밥을 하고
반찬을 하고
그리고
그 음식을 먹는 우리 곁에서
맛있죠?라고 강압적? 확인을 거듭하던
며느리의 노고에도 따듯한 애정을 느끼게 되었다.
#.
역시
전화위복 이란
전화로만 되는 일이 아님을^^
느끼고 깨닫게 되었다.
#.
문둥이 한밤중에 애 낳아 씻기듯
홀로 더듬거리며 심었던 감자가 싹이 나고
일군의 조무래기들과 심은 고추는 푸르게 일어섰으니
한 뼘쯤 생겨난 마음의 여유로
새벽마다 뒷산에 들어 고사리를 구한다.
#.
공손하게 허리 한번을 굽혀야
한 줌 씩 얻을 수 있는 고사리,
#.
무릇
모든 음식이 그러하거니
먹기 전에도
먹고 나서도
공손히 허리 굽혀 감사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