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성장보다 성숙
햇꿈둥지
2009. 2. 10. 13:28
아이들 다 떠나 버린 뒤 흰머리 성성한 촌 부부만 덩그라니 남아 맛대가리도 멋대가리도 없이 맹숭맹숭 사는 세월 이거니
정월 대보름 이라고 마을마다 집집마다 오곡 밥 익고 산나물 기름지다
어지렁 걸음으로 뒷 밭에 올라 등짝에 땀 배이도록 괭이를 휘둘러 흙 속이기 보다는 옹골진 얼음 속에 갇혀 있는 냉이를 캐어 맑은 물에 씻고 지난 여름 갈무리 했던 질경이며 시레기를 오물조물 무쳐 흐린 불빛 아래 앉아 기어이 막걸리 사발을 끌어 안고 보니
거 뭐 꼭 산해진미가 상다리 부러지도록 올라 앉아야 행복한 밥상이 되랴
달빛 치렁하고 바람 산들해서 추녀 밑 풍경 소리조차 별빛 섞여 감겨드니 여기에 더 무슨 욕심이 있어 권주가를 청하랴
달빛 아래 듬직한 나무둥치에 기대어 오줌을 깔기다가 문득
열대우림의 나무들은 맹탕의 덩치를 부풀려 나이테 없는 녀석도 있다 하더라만
나무들
봄 부터 잎을 키워 더운 여름을 우쭐우쭐 자라다가 이 혹독한 계절 잎 다 떨군 채 알몸으로 서 서 옹골지게 성숙 했으니 나이테란 한 해 숙제를 성실하게 마친 나무의 속살에 동그랗게 그려지는 꽃마루가 분명하지
그저 눈만 뜨면 최고요 일등 이라야 한다고 염불하듯 와글대는 사람 살이는 또 얼마나 우스꽝스런 청맹과니 놀음인가
오로지 성장이 아니라
과묵한 성숙의 담금질 이어야 하는 거라고 어둔 숲 속 나무들
큰 스님 죽비자 처럼 하늘을 휘둘러 일러 주던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