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 이야기 5.
[설악동에서 천사를 만나다]
그 해 여름
휴가 였고 그리고 둘째인 딸녀석의 백일이 코 앞에 있었음에도
백일 전날 집으로 돌아 오기로 계획을 세우고는 홀로 산행을 나섰다
용대리 부터 다시 구곡담 계곡을 거쳐 대청을 오른 뒤에 천불동 계곡을 경유하여 설악동으로 하산하는 1박2일의 대단히 빠듯한 일정,
용대리에서 차를 내려 백담사에 이르는 동안은
계곡물 맑지요
바람 부드럽지요
더없이 좋은 산행 일기 였다가
저녘 무렵 수렴동 대피소 부근에서 야영을 하며 별빛 아래 거나한 독작의 파티도 했겠다... 내일 이른 아침에 대청을 넘어 서면 되겠구나 싶었는데...
이게 어이된 일인지
새� 한시경 부터 줄기차게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아침의 판단은 지독한 실수였다
그칠 줄 알았지...
산골짜기 부분적인 소나기 정도로 판단 해서는 산행을 시작해서 저어~ 모퉁이만 돌아서면 날이 들겠거니...이런 판단으로 주섬주섬 물에 젖은 짐들을 챙겨 걷기 시작 했는데 더도 덜도 아닌 꾸준한 빗줄기는 산을 오르는 내 내 그칠 줄 몰라서 짐도 젖지 몸도 젖지...무게는 자꾸 더해지지...
더 큰 문제는 발이 젖는 거였다
그리고
봉정암엘 오를 무렵 부터는 빗줄기로가 아니라
뾰족한 얼음 조각들이 온몸에 들어와 박히듯 차갑게 느껴졌다
몸이 덜덜 떨려 오고 이가 부딪히게 느껴지는 한기
저체온증에 대한 걱정이 공포감으로 닥아 왔다
소청 산장에 들려 잠시 젖은 짐을 풀고 꺼내 입을 수 있는 옷들로 몸을 감싼 채 컵라면 한그릇을 불어 터지도록 품안에 끌어 안고 있었다
그렇게 몸을 추스리는 동안에도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이쯤의 상황 이라면 당연히 산장에서의 1박을 결심 했어야 하지만 둘째의 백일 전에 귀가를 해야 한다는 문제
다시 물에 젖은 배낭을 꾸려서 걷기 시작,
대청을 포기하는 대신 바로 하산 길을 택했다
몸도 짐도 더우기는 신발 까지도 흠뻑 물에 젖어 이제 발바닥은 얼마나 불어 터진 건지 돌부리를 차고도 감각이 없다
비선대를 지날 무렵이 저녘 여덟시경
시장끼 조차 느껴지지 않는 뱃 속에 감자전과 함께 동동주 한잔을 들이켰는데
이때부터 온몸이 풀리기 시작한다
취기에 더해 긴장이 풀리면서 다릿심 까지 풀려 버린 것이다
기다시피 하여 설악동 택시 승강장 까지 이동은 했는데 이제 서 있을 기운조차 없다
배낭을 멘 채로 기절하듯 누워 있던 귓가에 사람의 소리들이 들려 왔고 몇사람에 의해 택시에 태워지는 듯 했고 그리고 몇 집의 민박집을 둘러 둘러...가는 택시,
왜? 가까운 아무 민박집에든 내려 주지 않는 걸까?
그렇게 몇 집을 들렸던 택시 기사께서 말씀 하셨지
"너무 지쳐 있어서 따듯한 물이 나오는 집을 찾았노라고..."
그게 너무 고마워 택시비가 아닌 사례비로 더 드린 돈을 택시비 외에는 잔돈 까지를 배낭 주머니에 넣어 준 뒤 떠나 버렸던 고마운 사람...
비에 젖어 팅팅 불은 내 몰골을 본 민박집 아주머니의 첫마디는 이랬다
"미쳐도 단단히 미쳤어 이 날씨에...설악산이 무슨 동네 뒷동산 인 줄 알아?"
씻는 둥 마는 둥
밥 먹을 기운도 없이 까무러쳐 버렸는데
설핏 잠결에 느껴지는 사람의 기척,
그리고 바람이 지나는듯한 발바닥의 감촉
이상한 일도 다 있지
아침에 일어나 보니 지난 밤 신발을 벗을 수 없도록 붓고 불어 있던 발바닥이 말끔히 나아 있었다
민박집 주인 아주머니께서 밤 늦도록 들락 거리며 물파스 찜질을 해 주셨다는 거였다
빗속의 무모한 산행으로 지독한 고생은 했지만
이렇게 사람이 아닌 천사들을 만나는 기적 같은 일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