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서석 이야기.5
햇꿈둥지
2006. 11. 27. 16:57
산이 높은 탓도 일조를 했겠거니와 단층의 게딱지 같은 건물들이 옹크려 모여 있는 거리,
그래서 겨울은 더욱 춥게 느껴졌었다
그런데 그 얼마 안되는 집들 속에 여인숙 간판을 달고 서 있는 집들이 30개가 넘어 보인다
마을 사람 모두가 밥은 집에서 먹고 잠은 여인숙에서 자나???
내가 이 마을로 들어 선 시절에야 한물 간 일들이 되었지만
오래 전 시절에는 철로의 침목이 말 그대로 침목 이었다
이러니 어느 구간에 철로가 개설 된다든지 어느 구간에 침목 교체 작업이 있다든지...
이런 저런 수요들로 나무를 산떼기로 사 들이는 목상들은 그 시절 용어로 고다시꾼(벌목꾼)의 일군을 이끌고 골드러쉬, 아니 우드러쉬를 이루었었다
이렇게 사람들로 성시를 이루자 가장 기본적인 숙박업이 성 할 수 밖에 없었고 이에 대한 고리 형성으로 방석집이 늘고...자연히 산간 촌 마을에서는 쉽게 구경 할 수 없는 현금 유통이 활발해서 꺽지 아저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 시절에는 동네 개들도 지폐를 물고 다닐 정도였다..."고 했다
이쯤에야 이런 흥청거림도 사양 길로 들어 서서 많이 갈아 앉고 차분해진듯 보이기는 하나 아직도 내 눈에는 진풍경으로 보이는 일의 하나가
마을 사람 대부분이 공통적으로 호칭하고 있는 산림간수의 일 이었다
다분히 왜색적으로 느껴지는 산림간수란 그 시절 영림서 공무원을 지칭 하는듯 한데 이 사람은 허리춤에 이상하게 생긴 짤막한 막대기 하나를 차고 다녔고 산판이 생기면 늘 뒷짐을 지은채 모인 사람의 수가 얼마나 되든 가장 어른의 대접을 받으며 거만하게 나타나곤 했었다
나중에 산판을 들어가서 알게 된 일이지만 그의 허리에 매달린 막대기는 벌목 반출 승인용 철제 압인 이었던 것이다
베어진 나무의 절단면에 이 압인을 꽝~ 꽝~ 찍음으로써
나무들은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고 비로소 환금성을 갖게 되는 것 이었다
이러니 산림간수, 아니 영림서 직원은 최소한 나무와 관련해서 먹고 살아야 하는 그들에게 무소불위의 권능을 가지고 군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겨울은 더욱 춥게 느껴졌었다
그런데 그 얼마 안되는 집들 속에 여인숙 간판을 달고 서 있는 집들이 30개가 넘어 보인다
마을 사람 모두가 밥은 집에서 먹고 잠은 여인숙에서 자나???
내가 이 마을로 들어 선 시절에야 한물 간 일들이 되었지만
오래 전 시절에는 철로의 침목이 말 그대로 침목 이었다
이러니 어느 구간에 철로가 개설 된다든지 어느 구간에 침목 교체 작업이 있다든지...
이런 저런 수요들로 나무를 산떼기로 사 들이는 목상들은 그 시절 용어로 고다시꾼(벌목꾼)의 일군을 이끌고 골드러쉬, 아니 우드러쉬를 이루었었다
이렇게 사람들로 성시를 이루자 가장 기본적인 숙박업이 성 할 수 밖에 없었고 이에 대한 고리 형성으로 방석집이 늘고...자연히 산간 촌 마을에서는 쉽게 구경 할 수 없는 현금 유통이 활발해서 꺽지 아저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 시절에는 동네 개들도 지폐를 물고 다닐 정도였다..."고 했다
이쯤에야 이런 흥청거림도 사양 길로 들어 서서 많이 갈아 앉고 차분해진듯 보이기는 하나 아직도 내 눈에는 진풍경으로 보이는 일의 하나가
마을 사람 대부분이 공통적으로 호칭하고 있는 산림간수의 일 이었다
다분히 왜색적으로 느껴지는 산림간수란 그 시절 영림서 공무원을 지칭 하는듯 한데 이 사람은 허리춤에 이상하게 생긴 짤막한 막대기 하나를 차고 다녔고 산판이 생기면 늘 뒷짐을 지은채 모인 사람의 수가 얼마나 되든 가장 어른의 대접을 받으며 거만하게 나타나곤 했었다
나중에 산판을 들어가서 알게 된 일이지만 그의 허리에 매달린 막대기는 벌목 반출 승인용 철제 압인 이었던 것이다
베어진 나무의 절단면에 이 압인을 꽝~ 꽝~ 찍음으로써
나무들은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고 비로소 환금성을 갖게 되는 것 이었다
이러니 산림간수, 아니 영림서 직원은 최소한 나무와 관련해서 먹고 살아야 하는 그들에게 무소불위의 권능을 가지고 군림 할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