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상경기

햇꿈둥지 2016. 8. 31. 05:14

 


 

 

 

#.

생일 이 후

연이은 손님 치레로 자꾸 자꾸 쌓여가던 피곤의 찌꺼기들이

입가로 뭉쳐버린건지

어느날 아침 잠에서 일어나 보니 아랫 입술이 지나치게 도톰해지고

입이 살짝 비틀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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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조리 살펴보던 의사샘,
벌레에 물렸거나
몸이 많이 힘들어 생긴 알레르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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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다닐 때와
직장 다닐 때
집을 옮길 때 마다 트럭을 끌고 쫓아다녀야 했던 딸아이가 시집 가던 날
만세를 불렀었다
 
이젠 이사 가는 일 없고도
간다고 해도 내가 관여 할 일 아니다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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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제기럴!
다시 이사를 하는데 이것과 저것은 싣고 오고
저것들과 이것들을 도로 싣고 가서는
혹시 나중에라도 필요할지 모르니 잘 보관 하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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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넘어 아이 엄마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자르지 못하는 탯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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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은 참 덥고도 다사하며 다난 했으나
단 한번의 비로 더위는 피시식 삭아 버렸고
입 돌아가게 하던 온갖 일들도 모두 끝나 버렸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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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고 밀쳐 두었던 마지막 숙제로
서울 하고도 인사동엘 찾아가서
붓 몇 자루와 낙관과 한아름의 책을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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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고다 공원 그늘이거나
그 공원의 담장 바깥 길에 버려져 있는
유기된 노년의 권위와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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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절 싱싱하던 시절, 펄떡이는 물고기 처럼
폭포를 거슬러 올랐다는 그니들의 무용담을
무료(無聊)함 속에 무료(無料)로 듣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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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도시 속 옹색한 구석 자리에 앉아
2~3천원쯤 하는 눅은 값의 순대국 한그릇을 먹고 돌아서서
도망치듯 내 집으로 돌아 온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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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릿조각처럼 퍼 부어지던 더위의 기억들 마져
시원하게 씻어버리라고
8월의 마지막 날
새볔부터 비가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