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토골 일기

비, 그리고 또 비

햇꿈둥지 2008. 8. 17. 12:53

 

 

"비도 오는데 연극 한편 때리실래요?

 입장권은 제가 구해 놓을께요"

 

매일 매일 청심 이라고 놀려 먹던 딸녀석이 이번엔 제정신을 가다듬어 심청이가 된 걸까?

자주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

 

덕분에 철딱서니 없는 두 부부는 회색빛 고속도로를 한 시간여 달려

온통 꼬맹이 관객 일색인 객석에 낑겨 이불꽃 이라는 인형극을 보았다

 

 

 

그리고도

여전히 비가 내리고

비 때문 이라고 무위의 연휴를 핥아 먹고 있는 동안

폐가의 거미줄엔 영롱한 빗방울 치렁하고

비 쯤이야 무어 그리 대수겠냐고 호박꽃 깊이 박혀 있던 노랑 벌 한마리...

 

 

 

잡초 엉겨 있고

제멋대로인 듯한 이 뜨락에도 정연한 질서가 있다

햇볕 들기 전에 보라색 나팔꽃이 피고

그 꽃 햇살에 다물어지면

그늘 속 수박풀꽃이 피어지는...

 

 

 

실한 고추들이 8월의 햇살에 담금질 되어 붉어졌고

아내는 그 고추들을 다시 태양볕에 맡겨 거두고자 한다

햇빛을 거두는 일...

이 아래 살아 있는 모두의 생명 거둠이며 질박한 겨울준비 이다

 

이제

해거름의 바람은 추위로 다가 선다

허름한 누옥의 창깃을 여미고

다시 옷깃을 여미고

작고 거친 손으로 여름의 남은 햇살을 거두어 마음깃을 여미고 나면

겨울은 

먼 길을 돌아 온 손님처럼 가난한 내 집 뜨락에 당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