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토골 일기

봄 속의 휴일

햇꿈둥지 2008. 3. 17. 09:58

 

 

#.

집 한채를 다 짓는 동안

쉴새 없이 제몸을 굴려 나무를 잘라대던 전기톱은 이제 명이 다 한건지

지난 달 나무 몇 둥치를 못 다 자른채 덜커덕 숨을 놓고 말아서

마누라의 지청구를 감수 하고라도 새 것을 하나 다시 장만 할까?...하다가

휴일 봄볕도 넉넉하니

봄볕에 나 앉아 이 잡는 늙은이 처럼

이놈이나 고쳐 보리라...창고를 뒤지다 보니

이게 뭬여?

멀쩡한 전기톱이 하나 또 있는거라...

 

어느 핸가 이미 새로 장만해 놓은 놈을 까맣게 잊어 버리고 있었던 것,

 

"도대체 무얼 얼마나 샀는지 기억도 못하고 쌓아 놓기만 한다"...는

봄바람 같지 않은 아내의 지청구...

 

새로 사 들여도

잊었던 걸 찾아도...

 

#.

아내의 국민학교 은사님께서 이제 은퇴를 하셨으니 

고개 넘어 마을로 정착 하시기 위해 올 봄 부터 새 집을 지으신다 하고

 

처 조카 녀석은

원주 시내에 집을 장만하여 이미 이사를 했고

 

또 다른 처 조카 녀석은

풀방구리 쥐 드나 들듯 소토골을 드나 들더니만

어제

황둔 골짜기 천여평의 땅을 샀다 하고

 

집과 땅은 마누라 앞으로 등기 되어 있다 하고...

 

노년의 소외와 비운이 불안하게 예감 되어 진다...

 

#.

딱 어느 날 부터 였는지 분명하게 선을 그을 수는 없지만

덜컥

봄이 당도 했다

 

비틀 비틀 봄볕 속에 흐르는 호랑나비를 만나고

척박했던 갈색의 땅을 헤치고 연록의 새싹들이 솟구치기 시작 했으며

바람은

비단결 처럼 온순해져서

이제 아무 의심없이 반팔 차림이 되어도 좋은 날들

 

이렇게

성질 급한 손님처럼 봄날이 떠나고

유리 조각 같은 햇살들이 쏟아 질 계절...

 

밭 갈아

씨 뿌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