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토골 일기

별빛 엽서

햇꿈둥지 2008. 8. 11. 11:27

 

 

#.

새소리 조차 없는 한낮

마을 정자에 앉은 노인들의 부채 끝에서만 바람이 일고 있었다

 

잔디를 깎고

오르고 내릴때 마다 차 밑에서 비명을 지르는 길 위의 더벅풀을 베고

태양빛으로 붉어진 고추를 따거나 하는 동안

유리 조각 같은 햇살의 무차별한 공습이 있었고

비명 같은 매미 소리들

 

#.

세번의 샤워에도 불구하고

입는 옷마다 땀 범벅이 되어 갈아 입기를 세차례

 달

 달

죽을 힘을 다해 더운 김을 뿜어 낼 뿐인 선풍기 아래

복병처럼 엎드려 있어야 했다 

 

#.

바람이 아니라

산 공기가 내려와야 한다는 걸

 

신열에 들 뜬 햇님이

서산 아래로 자맥질을 한 시간부터

산그림자 길게 눕고

돌틈에 옹크려 있던 풀벌레들이 비로소 울기 시작하면

별과 달이 빛나고

덩치 큰 산골짝에서 부터

서늘한 산공기들이 쏟아져 내려 온다는 걸...

 

#.

풀 숲으로 버려진 밭을 헤쳐

토마토와

가지와

오이 몇개를 얻었다

 

뜨거운 햇빛을 가두어

붉은 태양 맛을 간직한

산골짜기 가난한 밥상

 

#.

너른 창 밖에

별과

달이

빛나고 있었고

 

온통 풀벌레 소리

 

그리고

철 모르는 지지배와 머시매의

산 중

소꿉장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