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토골 일기

공책 한권 연필 하나

햇꿈둥지 2017. 7. 18. 16:48

 

 

 

 

 

1.

어찌 했길래

그 지경으로 다시 몸을 아프게 했느냐?고

한밤중 불쑥 전화를 눈물로 꼭 채워 주셨었다.

 

2.

화전으로 시작한 신접 살림은 배곯음을 채워주기에는 어림없는 일이라서

상처 입은 짐승처럼 찾아든 곳이 이곳 마을 이었다고 했다

 

3.

그렇게 30년,

큰아들은 어느 기관의 제법 힘쓰는 자리에 까지 올라갔으며 

둘째 아들은 늦은 결혼에도 조금씩 살림이 나아지고 있음이

살아 있음의 유일한 희망이라고 했었다.

 

4.

할머니는 늘

가장 부지런하면서도

가장 가난한 세월의 끈에 묶여 있었다.

 

5.

어느핸가

돌아가며 담당 하기로 한 마을 반장 일을 떠맡아야 했던 년말,

홀로 회관 뒤에 옹크려 울며 하소연 했었다.

"나가 가를 아나? 나를 아나?~"

결국 그 해 반장 일의 태반은 내 몫이거나 마을 모두의 몫이기도 했었다. 

 

6.

할머니 하고 정이 들었다

"할머니 내년부터는 공책 사고 연필 사서 나하고 한글 공부 하자구요" 

 

7.

할머니는 당신 이름부터 쓰자고 했었다

그래

그 예쁜 매화 이름 옆에 또 예쁜 매화꽃 그림도 그려가면서 말이지...

 

8.

혼자의 준비에 행복 했었다.

다시 꽃밭을 만드는 느낌,

 

9.

2주 가량 병원에 누워 있어야 했고

다시 한달 가량 병원을 드나드는 사이

할머니가 아프다고 했다

진드기에 물린 것 같다고...

큰 병원 이니까 괜찮지 않겠느냐고...

 

10.

그러나

내가 병원에서 나와 제일 먼저 한 일은

할머니의 문상 이었다.

 

11.

거동이 불편하신 아흔 초반의 할아버지만 남았다.

할머니 돌아가신 것 보다 더 나쁜 상황이다.

 

12.

그토록 자랑스러워 했던 큰 아들과 작은 아들은

흐린날의 저녘 노을처럼 슬그머니 저희들 집으로 돌아가버렸으므로

이제 홀로된  구순의 아버지께서는 더 이상 아들 자랑을 하지 않으셨다  

 

13.

할머니 가시고

내겐

공책 한권 연필  하나가 유품처럼 남겨졌다.

 

14.

여전한

빗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