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골에 들다
부처님 더불어 비 오시는 종일,
농사일 잔뜩 밀려 있음에도 밭 일을 할 수 없으니 지금 상황은 "비에 갇혀 있음"이다.
뒷산의 두릅이며 엄나무 순 조차 용케 비의 도움을 입어 우쭐 자라고 있으니
이 빗속에선 그저 그림의 떡,
나무 꼭대기 포도를 탐하는 여우처럼 올려다만 보다가
주섬주섬 보따리를 챙긴다
버너와 코펠과 도시락 한개에 더해
라면 하나쯤으로 묶인 보따리를 등에 메고 영월 한강 가 깊은 산속에 은거해 있다는 가재골을 찾아 나섰다
제천을 지나고
다시 영월을 지나고도 고씨 동굴을 지난 뒤에
길가에 홀로 서서 가재골을 일러주는 이정표 하나를 만났다
비 많은 날이면 넘치는 물길이 되어 버리는 다리 하나를 건너자마자
연록의 순한 숲을 지나 함부로 쏟아지는 폭포의 물길이 온통 길바닥으로 흘러
이내 발목이 젖어든다
가재골을 한문으로는 可在洞 이라 했다던가?
그리하여 풀이 하기를 사람이 능히 살 수 있는 곳, 이라고 들은 기억이 있는데
돌아 본 느낌 으로는
사람도 살 수 있는 곳, 이면 맞을 것 같다
터전의 문제에서 농사를 지어 연명 하기로는 사방 어디에도 가늠되는 넓이가 없으니
오로지 산에 기대어 살고자 하는 은자적 선택으로는 가능 했을듯,
그럼에도
좁은 오름길이 시멘트로 단장되고
이미 빼곡한 의자틈을 비집어 기어이 제자리를 마련코자 하는 욕심쟁이 처럼
빈약한 비탈의 터전을 파 헤쳐 지어지고 있는 사람의 집들...
이 너른 산품의 얼마만큼을 안과 밖으로 경계 짓고자 했을까?
바보 같은
사람의 욕심...
부처님 오셨다고는 했지만 뵈올 길 없어 건달처럼 나선 길은
사람의 발길이 느껴지지 않는 꼭대기까지 오른 뒤에야 안개의 만류로 돌아섰다
점심으로 싸 들고 나섰던 코펠과 버너를 사용하는 일은
어쩐지 빗속의 청승이 될까 싶어 집에 이를 동안 펴지도 못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