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토골 일기

가을 속에서

햇꿈둥지 2008. 10. 20. 07:27

 

 

 

 

 

#.

한참 앞선 날 부터 계획 되었던 먼곳 에서의 모임은 빌어 먹게도 계획에 없던 휴일 사무실 일이 돌부리가 되어 혼자 엎어진 꼴이 되고 말았다

어찌 됐거나 한나절 만에 끝을 내리라...의 스스로의 궁리 마져도 여의치 않아 일을 덮은 시간은 밤 늦은 시간,

집으로의 돌아감을 포기하고 잠자리에 들었다가 안개를 헤집어 집에 든 시간은

아직 밝음 전의 시간,

 

아내 없음은 빈 공간이 된다...중심과 기준의 문제는 차치하고...

 

#.

자르고

쪼개고

쌓기의 단순한 일을 반복 하다가

불러 청 할 사람 없으니 스스로 준비한 막걸리 한병을 비울 무렵 종구씨가 들어 섰다

 

그와 함께

맨 윗밭에 심겨진 들깨를 거두었다

건드릴 때 마다 현기증이 일 만큼 진하게 번지는 들깨 휘향... 

아픈 허리를 펴기 위해 잠시 일어서다가 앞산 뒷산 옆산 할 것 없이 붉은 빛 이거나 쇠잔한 누른빛으로 아주 밝고 맑게 깊어지는 가을을 비로소 만난다

 

베어진 들깨는 심기도 거두기도 늦은 탓에 별 수확이 없을듯

한 아름의 단을 집어 던져도 성의 표시 정도로 떨어질 뿐인 알갱이들

그러나

그 결과가 많든 적든 어쨌든

정직하지 않은 먹을거리가 넘쳐 나는 이 시대에 얼마나 값지고 마음 든든한 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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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고 연한 고추를 거두어 들이고 고춧대를 뽑아 세움으로써 올해 고추 농사는 사실상 종결 되었다

 

거두어 들인 푸른 고추들을

소금과 간장에 절이거나 된장 항아리에 장아찌로 넣음 으로써

우리는

도토리와 밤을 주워 들여 겨울 준비를 하는 다람쥐 부부처럼 가을 햇살 아래 부지런 하였고...

 

#.

봄에 이어 다시

집 주변으로는 충분한 겨울 채소가 될 수 있는 냉이들이 지천으로 번지고

가을 잠시 연한 먹을거리가 되어 주는 민들레며 씀바귀들...

 

장작은 실 하고

먹을거리 넉넉하니

 

겨울이 된들

흰눈이 겹으로 내린들...

 

#.

"올 한해 농사 수익이 없어 천이백만원을 까먹었다"는 앞 동네 베드로 형님 부부와

힘겹고 질긴 일상을 씹어 삼키듯

삼겹살 꼭 꼭 씹으며 밤 늦도록 술타령,

돌아 오는 길에 그가 쥐어 준

 

마늘 한접

버섯 한 봉다리가

별빛 아래 밤새도록

싱싱하고 푸른 웃음을 쏟아내고 있었다

 

징그럽도록 슬프고 따듯한 사람의 가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