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토골 일기
가을 끝자락에 눕다
햇꿈둥지
2009. 10. 26. 15:31
#.
골짜기 깊은 산골에 헛기침도 없이 불쑥 산그림자 눕고
어둠보다 먼저 이른 추위가 쏟아져 내려 왔다
난로를 청소하고
집 주변 마음껏 어지러 두었던 잡동사니들을 치우고 난 뒤
밤 이었다
잠시의 인연으로 한살이가 되었다가
이제는 없어지고 만 산동네 주공 아파트를 떠나 각각 이산의 삶을 살아 온 이들이
정수리 가득 흰머리를 안고 모였다
신혼 이었던 그니들은 이제 대부분 할머니 할아버지로 변해 있었지만
적층으로 쌓아 두었던 세월들을 두루마리 화장지 처럼 펼치며
우리는 참 따듯하고 명랑했다
묻혀 버린
또 하나의 고향...
#.
아주 순수하게
까만 어둠이 열리고
그 안에 명멸하는 별들
추위도
별빛도
투명하다
#.
"대부분의 어른들이 철학 이라고 주장하는 것들은 아집이거나 정신병적인 집착이예요"
늦은 밤
쐬주 한잔을 때리던 중 딸놈의 반격 이었다
논리적으루 겨 올르는거 가터...
그 밤
이누무 자슥은 엔띠크 패션쇼를 했었다
중핵교 교복에
고등핵교 교복에...
또라이 집구석...
#.
난로가
밤하늘 깊이로 젓빛 연기를 뿜고
난로 안에 고구마와 밤이 단내로 익던 시간
산 속
다람쥐 가족
가을 끝자락에 눕다
#.
우리네 삶은
이미 설정의 굴레를 갖고 있는거다
그렇지 않고는
아무것도 예측 할 수 없는 이런 복병 같은 상황들이
내 바람 따윈 아랑곳 없이
이토록 변화무쌍하게 펼쳐질리 만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