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토골 일기
가을머리
햇꿈둥지
2011. 8. 22. 14:52
유월부터 칠월을 건너 팔월의 깊은 날이 되도록 음습하게 비 뿌리던 날들
여름 끝자락의 주말,
계곡은 가는 여름이 아쉬운 사람들로 넘쳐 나서
물소리 처럼
깔 깔 깔 아이들 웃음소리 명랑했던 곳 곳,
치악의 척추를 넘나들며 두달 넘게 비를 쏟아 붓던 구름 위에는
저토록 찬란한 청람의 빛이 있었다
아직도 물기 가득한 풀밭을 둘러보니
먹을 것 없는 빈 밭을 어지렁 걸음으로 맴돌았던 멧돼지며 산짐승 발자국들 한숨처럼 널려 있고
다시
버려진듯 묵혀 있던 밭을 갈아 보리라...관리기의 등을 두드리니 이 또한 비 탓인지
고집 센 황소처럼 요지부동,
그러나
날나리 농사꾼일망정 내공이 십년 넘어이니 대충의 짐작만으로 말썽의 원인을 알아내고 만다
갸륵하고 감사하지...
올 여름 유일하게 거두어진 포도 여섯알
비에 삭아 제풀에 떨어지고도 떼거지로 몰려 다니는 어치의 부리짓 뒤에 남겨진 것들이다
공손하게 거두어
정갈하게 씻은 뒤
아내에게 진상했다
호들갑스런 감격이라니...
먼곳이 아님에도 일년에 한번 숙제처럼 뵙게 되는 두분,
올해도 여전히 더북한 잡초 속에 누워 계심으로 한나절 땀 흘려 정갈하게 벌초해 드렸다.
그러므로 이제는 어쩔 수 없는 가을
늦은 밤 창틈으로는 겨울을 예감하게 하는 가을이 풀무치 소리 앞세워 점령군 처럼 들이 닥치고
아무리 공손하게 받들어 마셔도 자꾸 가슴 시리게 고일뿐인 술잔
벌써부터
건달 바람이 추녀 끝 풍경을 함부로 걷어차고 지나가는
산골의 밤.